[취재일기] 시민 눈으로 국회 보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 김정욱 정치부 기자

지난달 폐회된 임시국회의 마지막 일정인 29일과 30일 본회의. 기자는 기자석이나 폐쇄회로 TV 대신 의사당 3층 방청석에서 국회를 지켜봤다. 시민의 눈으로 회의를 보는 데 보탬이 될까해서다.

①표결 때마다 밀물과 썰물=김원기 국회의장은 친절했다. 표결 때마다 몇 차례씩 의원들에게 "투표 다 하셨습니까"라고 물었다. 제자리에 앉아 있지 않은 의원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본회의장 안팎에서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다 방송을 듣고는 총총걸음으로 자리에 돌아가 의석 밑에 달린 전자투표기 버튼을 눌렀다. 29일 오후 조세 관련법이 통과될 때에는 수십 명의 의원이 몰려들어와 버튼을 누르고 몰려나가곤 했다.

②무조건"짧게""짧게"=의원들은 법안 제안설명이나 찬반토론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발언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빈 자리가 급증한다. 단상에 오르는 의원들은 죄라도 지은 표정이다. 첫마디는 예외없이 "짧게 하겠습니다"거나 "빨리 끝내겠습니다"다. 제안설명을 서면으로 대체한 한 의원에겐 동료 의원들의 격려가 쏟아진다. 다들 "자~알 했어"라고 외친다. 자세한 설명과 진지한 토론은 보기 어렵다. 그러면 해당 법안들이 상임위에서 모두 충분히 심사됐을까. 국회 관계자는 "아니다"면서 쓰게 웃는다.

③휴대전화가 산만한 분위기의 주범=방청석에선 국회 경위들이 엄격하게 휴대전화를 규제한다. 의원들이 회의에 전념토록 하기 위해서다. 정작 회의장은 엉망이다. 벨소리가 울리진 않지만 회의 도중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회의장 밖으로 나가는 의원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나가면서 휴대전화를 꺼내 버튼을 누르는 의원들도 보인다.

④잡담, 고성, 막말="날치기다" "내려와" "불법이야" "제대로 알고 얘기해". 30일 정부조직법 통과 때는 시장바닥이 무색했다. 정당과 노소의 구분 없이 고함과 막말이다. 단상을 놓고 몸싸움도 벌어진다. 원내대표단은 작전하듯 의원들을 배치한다. 초선들이 앞장선다. 충돌의 와중에 뒷좌석 쪽에선 잡담이 오간다. 단상 주변에서 얼굴을 붉히고 고함을 지르던 의원도 뒤로 가서는 웃는 얼굴로 대화에 끼어든다.

⑤늑장 개회는 여전=30일 오후 2시. 본회의 시간이다. 제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방청객들뿐이다. 회의는 30분 뒤에 시작됐다. 그러곤 40여 분 만에 정회. 이후 5시간여 동안 공전…. 결국 처리키로 했던 안건 가운데 5건이 다음 국회로 넘어갔다. 시간부족 때문이란다.

의원들도 한번쯤 방청석에서 자신들의 회의 진행 모습을 지켜보길 권한다. 그리고 17대 국회가 과연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자신에게 물었으면 한다.

김정욱 정치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