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완전히 독립된 제3의 기구에 맡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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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선 안 된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난 뒤 이경재 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 전 의원은 19대 총선 선거구를 조정했던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선거구 몇 개를 조정했던 지난번에도 해당 의원들이 방 앞을 점령하고 항의하면서 편법으로 미세 조정하는 수밖에 없었다”며 “국회에서 완전히 독립된 제3의 기구가 선거구를 정하지 않으면 조정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2011년 구성된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한 예다. 당시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선거구획정위원회는 ‘8개 지역구 분할, 5개 지역구 통합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정개특위는 무시했다. 획정위는 자문기구에 불과하고 최종 결정은 국회 정개특위가 하기 때문이다. 여야 의원들로 구성된 정개특위는 경기도 파주, 강원도 원주, 세종시 선거구를 분구 또는 신설하고 경남 남해-하동과 전남 담양-곡성-구례를 다른 지역과 통합시켰다. 결국 전체 의원 수가 299명에서 300명으로 늘었다.

 이번에도 같은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선거구 조정 대상만 62개에 달한다. 인구수를 맞추려면 사실상 전국 모든 선거구가 조정 대상이 될 거란 전망도 있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전국의 후보자들이 반발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선지 새누리당 보수혁신특위의 김문수 위원장은 “선거구 조정을 아예 중앙선관위에 위탁하자”고 제안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원혜영 정치혁신위원장도 “외부 획정위원회의 결정을 국회가 그대로 수용하는 안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에는 이미 선거구획정위를 선관위에 설치하는 내용의 선거법 개정안도 발의돼 있다. 새정치연합 이상민·박기춘 의원 등이 제출한 법안이다. 그러나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에서 선거구에 대한 찬반 투표를 하도록 규정했다. 국회가 외부 위원회의 결정에 계속 반대할 경우 선거구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의사결정 과정에서 정치권의 입김을 완전히 배제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이화여대 유성진(스크랜튼 학부·정치학) 교수는 “찬반 투표가 계속 부결되면 ‘룰’ 없는 선거가 치러질 수 있다”며 “정치권을 선거구 개편 과정에서 배제시키고 외부의 결정을 그대로 수용하도록 하는 강제 규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강원택(정치외교학) 교수는 “헌재는 2001년 결정에서도 인구비를 2대 1로 할 것을 권고했지만 국회가 이를 무시해왔다”며 “이번 결정은 비정상의 정상화로 국회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비례대표를 줄여 지역구 의석을 늘리는 등의 편법을 쓴다면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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