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금요일] 미 통화정책 결정하는 FOMC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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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 기간(Considerable time)’.

 ‘달러의 신전(Temple of the dollar)’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29일(현지시간) 세속에 내놓은 신탁이다. Fed는 “양적완화(QE)를 끝낸 뒤 상당 기간 저금리를 유지한다”고 했다. 재닛 옐런 Fed 의장 등 달러 신전의 사제들이 내놓은 말은 모호하다. 은유의 수준을 넘어 수수께끼 같다. 당장 글로벌 시장은 수수께끼 풀이에 나섰다. 상당 기간은 무엇을 의미할까.

 실마리가 있다. 미국 실물경제를 판단하고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사제들의 성향이다. Fed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2015년 멤버들의 성향이다. Fed 의장인 옐런 등 12명이 정원이다. 아직 두 자리가 비어 있다. 위원 10명이 내년에 갑론을박하는 과정 속에서 기준금리 인상 시점이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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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비즈니스위크는 “FOMC가 내년 1월부터 역사적인 변화를 맞는다”고 보도했다. 무슨 변화이기에 역사적이라고 했을까. 비즈니스위크는 “물가안정을 중시하는 매파가 FOMC 표결에 참여하지 못하는 기현상”이라고 했다. 매파가 권력다툼에 밀려서가 아니다. 상시 의결권을 가진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를 제외한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 11명 가운데 4명씩 돌아가며 FOMC의 표결에 참여하는 제도 탓이다.

 로이터통신은 “올해 의결권을 쥐었던 매파의 대표적 주자인 댈러스의 리처드 피셔와 필라델피아의 찰스 플로서 총재가 내년엔 FOMC 의결권 멤버에서 빠진다. 대신 시카고의 찰스 에번스 등 성장론자(비둘기)들이 대거 표결에 참여한다”고 보도했다. 내년 FOMC가 비둘기 둥지로 바뀌는 셈이다.

 FOMC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는 견제와 균형이다. 로버트 헤철 리치먼드준비은행 이코노미스트는 『Fed의 통화정책』에서 “금융 자본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견제·균형·타협이 가능하도록 1935년 만들어진 시스템이 바로 FOMC”라고 말했다. 이전까지 기준금리는 뉴욕준비은행의 주도로 결정됐다. Fed 의장과 이사들은 고무도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바람에 Fed는 대공황 초기에 월가의 입김에 휘둘렸고, 그 결과 실물경제는 더 나빠졌다.

 로이터는 “FOMC가 단일 세력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는 아주 드문 일이 2015년에 펼쳐질 가능성이 커졌다”며 “이를 근거로 많은 전문가가 기준금리 인상이 최대한 늦춰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비둘기 일색인 FOMC에서 ‘상당 기간’은 ‘아주 긴 기간’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FOMC 정치경제학은 1차 함수가 아니다. 영국 통화이론가인 찰스 굿하트 런던정경대학(LSE) 교수는 “세계 중앙은행 가운데 가장 복잡한 정치행위가 이뤄지는 곳이 바로 FOMC”며 “그곳에선 한 세력이 다수가 되면 분열이 이뤄져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복원된다”고 말했다.

 이미 비둘기파의 분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엿볼 수 있는 게 FOMC 회의록이다. 최근 회의록에 ‘매파 스타일’의 강경 발언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반란자들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미 경제매체인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월가 사람들은 강경 발언을 하는 몇몇 비둘기파를 따로 분류해 ‘선제적 대응론자’로 부른다”고 전했다.

 선제적 대응론자는 경기 둔화나 물가 상승 조짐이 보이면 먼저 대응해야 한다는 쪽이다. 이들의 조상은 중앙은행 독립의 길을 열어 ‘Fed의 구원자’로 불리는 윌리엄 마틴 전 의장이다. 마틴은 “중앙은행의 임무는 파티가 한창 달아오를 때 그릇을 치우는 일”이라며 금리를 결정할 때 ‘바람에 맞서(lean-against-the wind)’는 선제적 대응을 강조했다. 이 계보는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렸던 폴 볼커 의장과 ‘마에스트로’로 칭해진 앨런 그린스펀 등으로 이어졌다.

 현재 FOMC 내에서는 스탠리 피셔 부의장이 선제적 대응의 대표 주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비즈니스위크는 피셔에 대해 “자신이 언제 비둘기여야 하는지 또 언제 매가 돼야 하는지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월가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더들리 뉴욕 연준 총재도 금리 인상 등과 관련해 선제적 대응론자의 편에 설 수 있다는 전망이다. 금융감독 전문가인 타룰로 이사도 상황에 따라 선제적 대응론자로 기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퍼 비둘기파’인 옐런 의장의 변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블룸버그는 96년 옐런이 FOMC에서 활동하던 시절을 언급하며 “옐런이 매파와 같은 태도를 보이더라도 이상할 건 없다. 옐런은 뼛속 깊이 중앙은행가인 만큼 언제든지 물가 안정을 위한 긴축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 때문에 금리 인상의 시점은 오리무중이 될 공산이 크다. 비둘기파가 대세지만 선제적 대응론자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기존의 매파까지 가세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어서다. 또 다른 변수도 있다. 현재 공석인 Fed 이사 2명의 자리다. 금리 인상 시점을 당기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사 지명권을 조커처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중간 선거에서 Fed 이사를 인준하는 상원을 공화당이 장악하면 계산은 더 복잡해진다.

 ‘상당 기간’의 수수께끼는 시장의 혼란을 키울 수 있다. Fed가 너무 빠르지도 않고 마냥 늦지도 않은 시점을 택해 금리를 올리더라도 시장이 당황할 수 있어서다. 94년 2월 전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충격파를 던진 ‘그린스펀 쇼크’가 반복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린스펀은 당시 실업률이 6%대로 낮아지자 그해 총 여섯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상해 3%이던 금리가 그해 말 5.5%가 됐다.

하현옥 기자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결정기구. 1929년 대공황에 대응하지 못한 연준을 개혁하기 위해 35년 은행법에 따라 만들어졌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모델이다. FOMC 위원은 12명이며 연준 의장과 부의장을 포함한 7명의 연준 이사와 뉴욕 연준 총재가 상임 위원을 맡고, 11개 지역 연준 총재 중 4개 지역 총재가 순번에 따라 위원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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