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떠나는 계절, 그래서 더 반가운 손님 가창오리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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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하구 가창오리 군무.[중앙포토]

11월은 허전한 달이다. 허하고 휑해서 우울한 달이다. 한 달 전만 해도 풍성했던 들녘에는 찬바람만 불고, 울긋불긋 화려했던 산은 부쩍 수척해진다. 11월이 되면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내일은 더 춥고 혹독하리란 걸 알기에, 차마 앞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다. 좋았던 시절 되새기며 간신히 한 달을 버틴다.

모두가 다 떠나는 계절, 우리를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겨울 철새다. 이 보잘 것 없는 땅이 뭐 그리웠는지 철새는 저 멀리 북쪽에서 수만 리 길 마다않고 날아와 우리 품에 안기다. 고맙고 반가워 우리도 철새 앞에 ‘진객(珍客)’이라고 써 예를 갖추곤 했다.

겨울 철새라면 단연 가창오리다. 10월 하순이 되면 서산 천수만에 가창오리가 나타난다. 이 녀석들은 천수만에서 한 달쯤 살다 날이 추워지면 금강 하구로 다시 내려가고, 날이 더 추워지면 남해안의 저수지로 뿔뿔이 흩어진다. 그렇게 겨울을 나고 고향 시베리아로 돌아간다. 겨울 철새 중에서 가창오리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 까닭이 있다. 해뜰 녘과 해질 녘 가창오리 수십 만 마리가 펼치는 군무는, 말 그대로 장관을 연출한다.
그러나 지난겨울은 아니었다. 겨울 철새, 특히 가창오리가 몸씁 병을 달고 내려왔다고 손가락질을 받았다. 전국의 철새 도래지가 문을 닫았고, 사람의 접근을 막았다. 지난겨울 가창오리의 무대는 공개되지 않았다.

사진은 2009년 전북 군산 금강 하구에서 포착한 가창오리의 군무다. 다시 봐도 가슴이 뛴다. 올 11월에는 꼭 다시 보고 싶다.

편집장 손민호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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