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삭감의 전형(典型) … 머리를 하늘로 하늘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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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16강 토너먼트>
○·김지석 9단 ●·루이나이웨이 9단

제3보(22~28)=삭감(削減)은 놀라운 수법이다. 반상에 미치는 영향 중에서 삭감만큼 지대한 수법이 또 있나 싶을 정도다. 삭감이 반상에 처음 펼쳐진 것은 17세기 일본에서다.

 고대 중국에서 발상한 바둑은 세계관(바둑이란 모름지기 이리 두어야 한다)이 돌을 둘러싼 전투였다. 얼마나 상대를 많이 포획하느냐, 그것이 초점이었다. 하지만 17세기 일본은 돌보다 집을 중시했다. 영토 싸움이 초점이었다.

 집을 중시하니 수법의 강조점과 착안점(着眼点)이 변했다. 돌은 버려도 된다. 다만 상대보다 한 집만 더 많으면 이긴다! 그 결과 상대에게 집을 적당히 양보하는 수법을 착상할 수 있었다. 그것이 삭감이다.

 오늘 우변 흑진을 가볍게 누르는 22가 삭감의 급소다. 흑이 둔 23·25·27도 놓칠 수 없는 급소다. 만약 흑이 23을 두지 않는다면 백이 곧 23을, 25를 간과한다면 곧 25에 두어서 백이 유리하다.

 ‘참고도’도 많이 두어지는 삭감의 공방책(攻防策)이다. 가벼운 5 두칸 대신에 a나 b도 좋은 자리다.

 삭감의 결과는 이렇다. 상대는 아래에 위치한다. 변에 가까우면 집짓기가 좋다. 하지만 제한된 집이다. 나는 머리를 하늘로 내민다. 발전성을 갖는다. 타협이지만 실력이 높을수록 하늘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문용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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