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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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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시간에도 품질이 있다. 고품질 인생은 고품질 시간을 살아간다.

시간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인간은 시간의 매듭을 발명했다. 해가 동트고 또다시 틀 때까지를 '하루'라고 매듭지었다. 그걸 기준으로 연과 월, 시간과 분.초가 정해졌다. 그저 흐르는 시간을 의식의 세계가 잡아챈 것이다. 문명은 시간을 잡아챈 데서 시작했다. 매듭은 저장이다. 에너지의 축적이다. 새로운 모험의 출발점이다.

지금까지 잘나가던 사람은,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에 의해 수만 자 써놓았던 글이 노트북에서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일을 겪을 수 있으니 잠깐 멈춰 숨을 고르시길 바란다. 노트북의 저장 키를 누르고 먼 산 한번 바라보듯 시간에 매듭을 주는 게 좋다.

일이 헝클어졌거나 하는 일마다 되는 게 없어 걱정과 두려움, 불안과 위축감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기가 삶의 원료로 사용하는 시간이 불량품이 아닌지 따져볼 일이다.

시간 불량품은 어떤 사람들이 사용하는가. 우선 시간은 철철 넘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무 비용도 지불하지 않고 시간을 무한히 끌어댈 수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시간은 살아있는 인간의 의식 속에서만 존재한다. 의식 속 시간은 유한하다. 그 시간은 물이나 공기처럼 애써 관리하지 않으면 저질이 된다.

시간은 의식을 집중할 때 질이 높아진다. 사람이 최고의 컨디션으로 의식을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약 한 시간 반이라고 한다. (사이토 다카시, 홍성민 옮김, '절차의 힘')

의식의 집중도는 사람마다 시간대에 따라 다르다. 대체로 아침 해의 에너지가 충만한 오전이 집중도가 높다. 이런 것을 예민하게 느끼는 훈련을 거듭하면 고품질 시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내면의 깊은 울림에 귀를 기울여 그걸 시간에 담아내는 사람은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 미래상이 또렷하게 그려진 사람의 시간은 권태롭지 않다. 예컨대 가정주부가 자기를 '행복을 생산하는 전문직'으로 의식한다면 그는 양질의 시간을 소비하게 될 것이다.

내일은 7월 1일. 2005년 시간의 반을 매듭짓는 날이다. 주5일 근무제에 합류하는 직장인 인구가 300만 명으로 늘어 국민생활에 큰 변화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 내 시간의 품질을 생각하기에 좋은 날이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