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고지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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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세금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는 정치·사회제도의 변천에 따라 여러가지로 나오고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정부의 서비스란 재를 살때, 국민이 그에 대해 지불하는 가격이라는 개념까지도 등장하고 있다.
정부의 기능이 국민의 사익을 위해 있다는 인식아래 세금과 공공서비스의 교환에 가격체계를 도입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크든 작든간에 정부의 서비스를 받고있으므로 세금을 내야한다는 것은 국민의 당연한 의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만 소득의 발생규모에 상응한 세금을 부담하는 것이 사회정의에 들어맞기 때문에 공정과세를 그 이상으로 하고있을 뿐이다.
조세법정주의라는 것은 세금의 부과와 납입에 최대한의 합리성을 부여하도록 일종의 공약을 구현한 것이라 해석해도 큰 잘못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조세당국이나 납세자는 흔히 조세법정주의를 잊고 타성적으로 세금을 부과하고, 납세를 하고 있었다.
그런 뜻에서 24일 대법원이 세금고지서에 세액산출근거를 명시하지 않은 것은 위법이며 따라서 부과자체가 무핵라고 판결한 것은 조세법정주의의 정신을 명확하게 밝힌 획기적인 판례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이제까지 징세자나 납세자가 관행으로만 알고 무시해온 법의 규정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국세징수법 (제9조ⓛ항) 에는 국세를 징수하고자 할 때는 납세자에게 과세연도, 세목, 세액, 산출근거, 납부기한과 장소를 명시토록 하고 있음에도 징세자의 편의에 따라 명시항목이누락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조세행정이 징세편의위주로 되어있다』 는 납세자의 불평도 법에 가장 충실해야할 당국이 법 준수를 태만히 한데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비단 국세에 한한것이 아니라는 점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지방세라고해서 국세부과 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지방세는 .물론이고 그에 준하는 각종 공과금도 조례를 임의로 개정하여 일방적으로 징수하는 사례가 흔하다.
지방세법(25조및 동시행령8조)에도 국세의 고지와 똑같은 규정을 하고 있으므로 앞으로 미세자의 위법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납세자가 복잡한 조세법규정을 몰랐으므로 지금까지는 적당히 넘길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일단 대법원에 의해 미세자의 의무가 밝혀진 이상, 그러한 편의주의행정은 허용되지 않을것이다.
조세당국은 기회있을 때마다 근거과세, 공평과세를 부르짖어 왔음에도 조세행정이 스스로 법규를 위반한다면 국민도 그에 공감할 수 없지 않겠는가.
올해 조세행정의 구호는 신뢰세정이다. 미세자와 납세자가 서로 믿자는 것이다.
그러면 신뢰감은 어디서부터 싹트는 것인가.
세금부과가 정당하게 이루어져있고 확실한 근거를 갖고 있다는 것을 똑똑하게 제시해 납세자를 납득시켜야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납세풍토가 신뢰에 바탕을 두고 깨끗하게 정착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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