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장사 박경희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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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주말연속극 『고백』의 녹화를 앞둔 MBC-TV 분장실. 말쑥한 탤런트 이정길씨가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머리와 구겨진듯한 점퍼를 입고 다듬어지지 않은 턱수염, 가늘고 굵은 몇가닥의 주름등이 정교하게 만들어져 가면서 텁수룩하면서도 예리한 청년작가로 변모해 간다.
극중인물의 성격에 맞도록 배우들의 얼굴을 새로이 창조해 내는 손의 마술사인 분장사.
온통 남자들만의 세계에「여자만이 지닌 섬세함」을 살리고자 당돌하게(?) 뛰어든 여자분장사 박경희씨(25).
1년3개월의 짧은 경력이지만 그는 「자부할만한 분장사」가 되려는 꿈을 키워가고 있다.
『분장에 필요한 재료와 도구의 사용방법만을 익히는데도 서너달이 걸렸습니다. 흔히들 선배들이 「수습10년」이라고 말해서 단순히 겁주는 소리려니 했읍니다만…. 자주 부딪쳐 보고 인물의 성격에 따라 구체화시킬 이미지가 빨리 터득돼야 하겠지요.』
76년부터 H화장품의 미용담당으로 일해온 그는 80년1월 MBC분장사로 스카우트되는 행운을 안았다.
현재 분장사로 일하는 선배들이 연극에서부터 비롯되었듯이 그녀 역시 학교다닐 때부터 연극에 관여하면서 분장과 인연을 맺게된 셈이라고.
우리나라에서 「분장사」라는 전문직업이 생긴 것은 61년. 전예출씨와 박수명씨를 선두로 TV와 연극·영화·쇼무대등을 포함, 30명정도 종사하고 있다.
분장사가 해야할 일은 우선 극대본을 충분히 읽고 연출가와 상의를 거친다음 등장인물의 성격을 현상화하고 배역이 맡겨진 탤린트들의 인물을 대본에 따라 구체화시킨 성격대로 분장해 나가는 것. 그래서 분장사의 가장 어려운 일은 많은 분량의 대본을 여러차례 읽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분장에 필요한 기본재료와 도구는 기본착색용 파운데이션·붓·모발·가발·수염재료·특수재료 등.
마귀할멈이나 비뚤어진 코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고무찰흙이나 껌을 사용하고 피를 흘리게 하기 위해선 토마토케첩에 식용색소를 섞거나 빨간 크림치약을, 이빨이 빠진 모습은 김을사용하거나 검은 왁스를 칠하여 노인역에 이용한다고 한다.
아직까지 주역배우의 분장을 맡는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초보적인 단계라는 그는 『현재 단역의 분장을 소화해내고 있지만 이 단역들이 주역으로 커나갈 즈음이면 어느정드 분장사로서 자신이 서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갖는다고.
흑백텔리비전에서 컬러텔리비전으로 바뀌면서 분장사로서는 또 다른 업무가 늘어난 셈이다. 컬러텔리비전에서는 흰 것을 검게 보이기는 쉬워도 검은 것을 희게 보이기 어렵고 특히 남자는 수염이 많고 피부가 거칠어 보다 세밀한 분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남자들의 수염이 가장 힘든 작업이라면서 그냥 막연히 수염이 있으리라는 위치와 실제 수염을 하나하나 붙여나가는 위치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더라며 짝짝이 수염을 붙인실수는 자주 저질렀다고 그동안의 고충을 털어 놓는다.
그녀를 지켜보는 박수명차장(MBC분장실)은 『수많은 여자지망생들이 거쳐갔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실적이 없어 박양이 여자분장사로서 선두주자』라며 『여자만이 표현할 수 있는 정교함을 어느정도 발위할 수 있느냐에 여자분장사의 존립여부가 달려 있을 것』이라고 격려한다.
박경희씨는 76년 명성여고졸, 박용관씨(52·회사원)의 2남5여중 막내딸이다. <육상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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