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봄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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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홍신선(1944~ ), '봄날'

암나사의 터진 밑구멍 속으로

한 입씩 옴찔옴찔 무는 탱탱한 질 속으로

빈틈없이 삽입해 들어간

수나사의

성난 살 한 토막

폐품이 된 이앙기에서 쏟아져 나온

나사 한 쌍

외설한 체위 들킨 채 날흙 속에서 그대로 하고 있다

둘레에는

정액 쏟듯 흘린

제비꽃 몇 방울



봄은 충동의 계절이다. 살아 있는 것들의 일탈을 부추긴다. 그뿐이랴. 나사까지 봄의 생동하는 기운을 못 이겨 춘정을 불태우고 있지 않은가. 제비꽃은 더욱 요염하게 행인의 눈길을 빨아들일 것이다. 시인 김지하에 의하면 유기물이든 무기물이든 우주 안의 모든 존재는 자기 조직의 완결성을 향한 생명운동을 지속한다고 한다. 다만 그들 각자에게는 진화 속도의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나사 또한 예외가 아닐 것이다.

이재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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