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담보대출 경쟁 '나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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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경제부 기자

최근 서울 목동과 경기도 하남시 등 수도권에는 '타 금융권과 연계해 집값의 100%까지 대출해 준다'는 현수막이 곳곳에 나붙었다. 서울 강남과 송파, 경기도 용인에서도 '집값의 95%까지 대출해 준다'는 전단이 나돈다.

서울 강북 지역에선 집값이 잠잠한데도 같은 평형의 담보대출 가능 금액을 이틀 새 5000만원이나 올린 전단이 집집마다 배달되기도 했다. "자고나면 대출 한도가 늘어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옷 장수 재고 떨이하듯 수도권 아파트 단지에선 '1억원 대출에 월이자가 약 38만원'이라는 안내전단이 곳곳에 붙어 있다. 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 경쟁이 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감독 당국은 이달 중 하려던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실태 점검을 8월 이후로 연기한다고 최근 밝혔다. 정부.여당이 8월 말 부동산시장 종합대책을 마련하기로 한 만큼 이 내용을 지켜본 뒤 당초 계획했던 점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종합대책이 나온 뒤 챙겨도 늦지 않다. 40~60%로 규정된 주택담보대출 인정 비율도 56.4%에 불과해 걱정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물론 은행들이 금감원에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만 보면 주택담보 비율에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투기지역은 이 비율이 40%로 제한받고 있는데도 실제 대출 금액이 이 비율을 훨씬 뛰어넘고 있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또 은행에 이어 최근 보험과 상호저축은행이 대출 경쟁에 뛰어들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한도의 두 배까지 대출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점검을 굳이 대책 발표 이후에 할 이유가 없다. 점검은 말 그대로 실태를 파악하는 것이므로 미리 해야 실효가 있다. 점검을 미루니 막판 대출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에서도 제2금융권이 담보대출에 뛰어들면서 집값 거품이 결정적으로 확대됐다. 집값 거품을 우려해 부동산대출 총액제를 도입하고 금리를 올렸지만 현장 점검이 소홀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김동호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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