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담도 개발사업 참여 권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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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담도 개발 비리의혹 관련 수사를 벌이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수사관들이 27일 경기도 성남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행담도 개발 관련 서류를 압수해 차에 싣고 있다. 강정현 기자

손학래 도로공사 사장이 행담도개발㈜과의 분쟁이 한창이던 지난 2월 광주 지역의 H건설 박모 사장에게 행담도 개발 사업 참여를 권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업 참여 권유를 받은 박 사장은 정찬용 전 인사수석 등 현 정권 실세들과 친분이 두터운 인물이다.

행담도 개발 사업을 조사했던 감사원의 관계자는 27일 "도공과 행담도개발㈜의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이 손 사장과 김재복 행담도개발㈜ 사장 등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5월 3일)에 김모 전 검사 외에 건설업자인 박모 사장도 있었다"며 "박 사장은 이에 앞서 2월 중순 자신과 손 사장.김 사장의 3자 회동을 주선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손 사장은 2월 모임에서 김 사장에게 '자금을 유치하지 못할 바에는 사업을 그만두라'고 강하게 질책한 뒤 박 사장에게 '행담도 개발을 같이 해보자'고 권유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당시는 행담도개발㈜의 채권 발행이 마무리돼 8300만 달러가 도공과 행담도개발㈜의 공동계좌로 입금돼 있었고, 양측이 3억 달러의 추가자금 조달 문제를 논의 중인 상태였다.

그러나 감사원은 지난 16일의 감사결과 중간발표에서는 이런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손 사장은 이에 대해 "술이 좀 취한 상태에서 박씨에게 그런 (사업참여 권유)말을 한 것은 맞지만 실제로 박씨를 행담도 사업에 참여시킬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행담도 개발사업에 ▶제삼자를 참여시키거나 ▶김 사장을 행담도 개발사업에서 손을 떼게 한 뒤 다른 사업자에게 넘기는 두 가지 방안을 구상했다"고 덧붙였다. 박 사장은 "어떻게 사업자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겠느냐"며 "행담도 사업에 참여할 의사는 없었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민주화운동 경력이 있고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광주 지역에서 노무현 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와 '노풍(盧風)'을 일으킨 주역 중 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박 사장은 정부가 추진 중인 S-프로젝트(서남해안 개발사업)에 관심을 갖고 동북아시대위원회와도 접촉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경영하는 H건설은 2002년 이후 항만.매립 등 관급 공사를 따내며 급성장한 기업이다.

김기찬.강갑생 기자 <wolsu@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손 사장, 김씨·건설업자와 만난 뒤 사업 재검토 지시

손학래 도로공사 사장, 김재복 행담도개발㈜ 사장, H건설 박모 사장이 만난 2월 말은 도공과 행담도개발㈜ 간의 분쟁이 한창이던 때다. 분쟁은 올해 초 8300만 달러어치의 채권을 발행하기 위해 행담도개발㈜의 주식을 담보로 제공하는 것을 도공이 반대하면서 본격화됐다. 분쟁이 쉽게 해결되지 않자 김 사장이 동북아시대위원회에 도움을 청한 것도 이 무렵이다.

손.김.박 사장의 모임은 박 사장이 제안해 이뤄졌다. 손 사장은 "(그날) 박 사장이 '왜 형님이 동북아위에서 자꾸 욕을 먹느냐'며 한번 만나자고 전화가 왔다"고 했다. 김 사장에게 전화를 한 것도 박 사장이었다. 박 사장은 손 사장과 고향(전남 보성) 선후배로 알고 지내던 사이다. 박 사장과 김 사장은 올해 1월 김모 전 검사의 소개로 알게 됐다.

감사원은 이날 모임이 적절치 않았다고 보고 있다. 감사원 관계자는 "손 사장이 오해를 받기에 충분한 가벼운 행동을 했다"며 "민간업자인 박 사장이 동북아위의 분위기를 공기업 사장에게 전달한 것도 적절치 않은 부분"이라고 했다.

손 사장은 3자 모임이 있었던 뒤인 3월 행담도개발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하고, 외부기관에 재검토 연구용역을 맡겼다. 당시 도공이 작성한 용역 지시서에는 '행담도개발㈜의 재무구조 취약'이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손 사장은 "지난해 말 김 사장이 은행 대출을 시도하다 거부당한 뒤로는 그의 자금 유치 능력을 불신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재복 사장은 "(재무구조 취약이라는 지적은) 명백한 국제적 신용훼손"이라고 반발했다.

이런 과정에서 양자 사이의 불신은 더욱 커졌고, 마침내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까지 개입하기에 이른다. 정 전 수석은 지난달 3일 도공.행담도개발㈜ 관계자를 불러 중재를 시도했다. 이 자리에는 박 사장과 그를 김 사장에게 소개해준 김모 전 검사도 참석했다.

감사원은 이런 사실을 조사했지만 "사안이 불공정 협약 등 당초의 감사취지와 다른 것이어서 감사 결과 발표에서 제외시켰다"고 밝혔다. 그러나 행담도 사업과 무관한 박 사장이 ▶3자회동을 주선하고 ▶정 전 수석이 마련한 중재자리에 왜 참석했는지 등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강갑생.박수련 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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