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 스로트 부인했던 펠트 부국장에 배신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내가 88살까지 살아오면서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닉슨 대통령 밑에서 일한 것이었다."

1972년 전직 CIA 직원 등이 민주당 대통령 선거운동본부에 도청장치를 하다 발각된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미 연방수사국(FBI)의 국장이던 패트릭 그레이(88.사진)가 30여 년 만에 입을 열었다. 그는 26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닉슨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고 정말 화가 났다"면서 "닉슨은 자신의 대통령직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경력도 망쳐버렸고 여러 사람을 감옥에 가게 했다"고 말했다.

또 "닉슨이 퇴임 뒤에 자신이 서명한 책을 여러 번 보내왔지만 절대로 그와 만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레이는 그러나 FBI의 2인자이던 마크 펠트 당시 부국장이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내부 정보 폭로자 '딥 스로트(Deep Throat)'로 밝혀진 데 대해서는 충격을 표시했다.

그는 "나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다"면서 "펠트 부국장은 자신이 결코 딥 스로트가 아니라고 나에게 여러 차례 말했다"고 서운함을 표출했다.

닉슨 대통령의 백악관에선 펠트 부국장이 딥 스로트 같다는 감을 일찌감치 잡고 있었다. 그래서 그레이 국장에게 펠트 부국장에 대한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권유했다고 한다. 그레이 국장은 그걸 거부했다. 오히려 누가 FBI의 정보를 누설하고 있는지를 조사하는 책임을 펠트 부국장에게 맡겼다. 고양이한테 생선 가게를 맡긴 셈이다.

"펠트 부국장은 나에게 매일 보고를 하는 부하였다. 내 부하가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받는 불명예를 당하는 걸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그레이는 설명했다. 그레이가 다 떳떳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당시 FBI의 수사 진전 상황을 피의자 격인 백악관에 계속 보고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상적인 건 아니었지만 대통령이 직접 원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백악관은 민주당 선거본부에 설치한 도청장치를 수리하다 붙잡힌 CIA 전 직원 하워드 헌트의 금고에 있던 비밀서류를 그레이에게 보관하라고 건네줬다고 한다. 그레이는 "서류의 내용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베트남 대통령의 암살에 관련이 있다는 것과 케네디의 사소한 잘못들에 대한 것이었다"면서 "그 서류들은 나중에 소각했다"고 회고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