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4. 땡볕 <18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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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사원의 실내에는 삼십여 구의 남녀노소 주검이 갖가지 형체로 이지러져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 위에 새카맣게 붙어 있던 파리떼가 인기척에 놀라서 한꺼번에 날아올랐던 거였다.

작전이 휩쓸고 지나간 다음에 브레이킹 중대가 들어가면 뒷마무리를 하게 되는데 청소는 주로 졸병들과 베트남에 갓 떨어진 신참들에게 맡겨진다. 사방에 흩어진 주검과 육괴를 주섬주섬 주워다가 포크 레인(리트프)으로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쓸어 넣는다. 스콜과 열기로 부패가 급속하게 진행되어 다리 하나가 보통 때의 두어 배쯤 크기로 부풀어 올라 있었고, 작업 중에 잘못 밟기라도 하면 물을 채운 비닐봉지가 터지는 것처럼 검붉은 물기가 쏟아져 나온다. 시멘트의 벽에 가서 달라붙은 순두부 같은 뇌수는 말라버린 지 오래되어 아무리 물로 씻어도 잘 떨어지지 않는다. 작업용 목장갑 두 벌을 겹으로 꼈어도 손바닥에는 되직한 간장 같은 물기가 축축하게 배어든다. 구덩이 속에 주검과 그 부분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어느 틈에 사방에서 파리가 몰려들고 낱개의 모양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검게 움직이는 거대한 덮개가 형성된다. '작업 끝, 휴식!' 명령이 떨어지면 주위에 몰려 앉아 수통의 물도 마시고 레이션 깡통을 따서 또 다른 고기인 햄이나 비프 덩어리를 먹는다. 누군가 구덩이 주위로 걸어오면 모두 목소리를 낮추어 주의를 준다. '저쪽으로, 저쪽으로 돌아가!' 그러나 이미 늦었다. 파리떼가 날아올랐다가 다시 구덩이 속으로 날아내리기 전에 그것들은 사정없이 레이션 깡통의 다른 고기 위에 내려앉는다. 병사들은 곧 체념하고 적응할 줄 안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의 표징인 셈이다. 한 손으로 얼굴에 또는 깡통 위에 내려앉은 파리들을 날리면서 다른 한 손으로 고기를 찍어 먹는다.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은 쥘 베른의 '십오소년 표류기'의 패러디인 셈인데 그는 인간의 휴머니티 내부에 깃든 악마성인 '바알세불'을 원래의 의미와 같은 파리떼로 은유한다. 이른바 문명이라는 것의 허약한 가설장치를 까발려 놓는다. 그렇다고는 해도 제대해서 그 작품을 읽으면서 속으로 픽, 하고 자조하던 기억이 난다. 아시아에서 그들이 저지른 전쟁은 골딩의 은유에 비하면 더욱 직접적이고 즉물적인 지옥이었다. 파리떼와 땡볕은 베트남전쟁의 내용이자 형식이었다. 휴머니티란 체험조차 하지 않은 '민간인'들의 사치스러운 관념일 뿐이다.

어느 새벽에 참호 속에서 눈을 뜨고 전방을 바라보면 축축한 안개가 방금 떠오른 태양의 열기로 흩어지고 시야가 천천히 열려갈 때, 그 어슴푸레한 속에서 주검들이 보인다. 덩치 큰 들쥐와 도마뱀들이 주검의 상처 난 구멍 안팎으로 들락거린다. 그러한 초현실주의적인 실경을 목도한 자는 꿈에서도 그것을 다시 재현할 수 없다. 그것은 무의식이 아니라 또렷한 자각 속에서 받아들여지고, 스스로 보통 때의 일상을 살아나가기 위하여 기억을 지우고 왜곡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나중에 감옥에서도 무의식은 견딜 수 없는 체험들을 은유로 처리했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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