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깊이읽기]'예술의 심장' 낭만주의에 대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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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낭만주의의 뿌리

원제 The roots of romanticism

이사야 벌린 지음, 강유원 외 옮김

이제이북스, 263쪽, 1만5000원

이해하려고 드는 자에게 낭만주의는 저주다. 낭만주의를 하나의 개념과 정의로 포박하려 들 때, 낭만주의 운동이라 불린 거대한 어군(魚群)은 일반론의 헐거운 그물 사이로 잽싸게 빠져나간다.

"낭만주의는 질병"이라고 했던 말년의 괴테는 이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낭만주의의 심장에 불을 당겼고, 칸트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절대적 확신을 통해 자신이 혐오했던 낭만주의의 진정한 아버지가 됐다.

결국, 낭만주의에 도전한 수많은 학자들은 낭만주의의 이름으로 불리는 숱한 이질적 요소 가운데 어떠한 공통점도 없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절대적 진리에 대한 믿음,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확신과 이를 통해 얻어질 보편적 이성이 인류를 해방시키리라는 계몽주의의 도도한 행진에 난입한 폭도들이 18~19세기의 낭만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모든 종류의 강요된 보편성에 대해 무제한적 저항을, 무기력한 평화보다는 투쟁의 욕망을 찬양했다.

사상사의 대가 이사야 벌린의 이 책은 해박한 지식으로 17~19세기 유럽 지성사의 격동기를 화려하게 펼쳐 보인다. 마침표를 찾을 때까지 무려 20행 가까이 읽어내려가야 하는 긴 문장들에 숨 막히긴 하지만 지루하기보다 긴장감이 감돈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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