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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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정록(1964~ ), '의자'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장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데

의자 몇개 내 놓는 거여



자주 가는 보라매공원에는 군데군데 의자가 많다. 나는 거기서 땀을 들이며 의자를 다녀갔을 절망과 그리움, 기대와 허망 등속을 떠올려 본다. 생활이 어려울수록 의자들은 더욱 분주할 것이다. 의자에는 우리가 모르는 서사가 상당량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의자는 그러므로 두꺼운 책이다. 또한 이정록 시인의 경우처럼 의자는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이고 위로다. 격려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사는 동안 의자를 부른다.

이재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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