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치기』는 의인법구사… 표현의 생동감 얻어|전체가 하나의 상정인『겨례』, 호소력 다소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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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옛날의 시인들은 자연이거나 사물을 만나면 즉석에 서시를 뽑아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현대에는 왜 즉흥시가 없느냐고 묻는 일이 있다.
아무리 시의 천재라도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듯 쓸 수는 없는 일이다. 즉흥시의 뒤에는 시인의 오랜 사고와 시적 충동의 적체가 있음을 알아야한다. 따라서 시조 한수쯤 쉽게 즉석에서 써낼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가지치기』는 의인법을 잘 구사해서 마치 언어의 기계체조를 보는 느낌이다. 생동감 있는 표현을 얻으려는 것은 좋지만 말을 부리는 기술을 한 쪽으로만 치중하면 오히려 그 효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아두자.
『겨레』는 시의 전체가 하나의 상징을 갖고 있다. 우리겨레의 역사와 힘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가령<실눈에 매듭을 풀고 옛 얼굴로 만나자>는 통일의 염원을 말 한 것이겠는데 이 경우 호소력이 부족한 것이 흠이다.
『봄밤』은 어리고 얕은맛을 내고 있는데 그 제목에 붙어있는 <연가>를 선 자가 떼어버렸다. 제목에서 지나치게 설명을 해서 시의 함축미를 감소시키는 결과를 경계해야한다.
『백령도의 봄』은 백령도가 상징하는 우리의 역사적 지정 적인 닻을 깊이 담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거친 표현들이 있어 세공에 힘을 기울여야겠다.
『어머님』은 누구나 느끼고 사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헌신이다. 시인은 있는 힘을 다 쏟아서 어머니를 노래하지만 그 사랑의 값하는 시는 쓰기 어렵다.
『진달래』는<보 (보)를 배었나>가 아주 거슬린다. <두견새 피 빛 울음>도 진달래를 두고 많이 써온 말이다. 자기의 것을 찾아보자.
『목련 송』은 만수가 갖는 절박한 숨결이 없이 시가 밋밋하게 흘러가고 말았다. 종장에서 껑충 뛰어오르는 전결의 심호흡을 잊은 것 같다.『봄비』는 <진실의 밀알><풋풋한 살내음>이 죽은 표현이지만 전체적으로 시의 바탕이 잡혀있다. 새 옷을 갈아입듯 말도 새 것을 쓰자. < 이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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