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뉴욕의 가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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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호 04면

뉴욕에 왔습니다. 출장 일정 사이 잠깐 비는 시간에 센트럴 파크에 갔습니다. 오락가락하는 가을비에 우산을 쓸까 말까 하다가 그냥 걷습니다. 나뭇잎들은 계절의 옷으로 갈아입기 직전입니다. 회청색 청설모가 부지런히 뛰어갑니다.

비가 와서 그런지 호젓합니다. 몇 번 출장을 왔지만 공원 안을 이렇게 천천히 걸어보는 건 처음입니다. 마천루 앞 하늘이 아주 넓습니다. 구겐하임 뮤지엄과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 있는 동쪽 라인 대신 이번에는 서쪽 라인을 따라갑니다. 링컨 센터와 줄리아드 음대, 메트로폴리판 오페라와 뉴욕 시티 발레단이 오손도손 모여있는 예술 광장을 조금씩 아껴가며 둘러봅니다.

비행기 안에서 읽은 소설이 떠올랐습니다. 이곳에서 사랑하고 아파하며 마침내 성숙해진 젊은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집어들고 온 책인데, 배경이 하필 뉴욕이라니. 이런 짜릿한 우연이야말로 삶의 진짜 재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내용 중에 존 레논이 쓴 비틀스 노래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Strawberry Fields Forever)’ 얘기가 나옵니다. 존 레논을 추모하는 작은 공간 ‘스트로베리 필즈’도 마침 서쪽 라인에 있네요.

“당신을 데려가고 싶어요 / 난 스트로베리 필즈로 갈 거니까요 / 그곳에 현실은 없어요, 마음에 걸리는 것 또한 없죠 / 스트로베리 필즈여 영원히.”

비 내리는 뉴욕의 가을은 비틀스의 노래를 타고 깊어만 갑니다.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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