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에도 같은사단서 병사8명 총기난사 당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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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28사단에서 20년 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당시 참혹했던 상황을 보여주는 군사법원의 판결문 내용이 공개됐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해 23일 보도한 이 판결문에는 지난 85년 2월 24일 일요일 새벽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산리 28사단 화학지원대 보급병으로 근무했던 박 이병에게 가해진 무차별적인 구타와 얼차려 등 폭행 내용이 담겨있다.

판결문에 따르면 박이병은 사고 전날인 85년 2월 23일, 타자연습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머리박기를 하는 도중 약 5회 구타당하고 말대꾸를 한다는 이유로 주먹으로 머리를 약 6회 구타당하였으며, 일석 점호 도중 손이 불결하다는 이유로 약 10분 정도 머리박기의 얼차려를 받게 되자 극심한 모욕감과 반발감을 느껴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사건 전날에 내무실에서 손모 병장과 김모 병장 등으로부터 구타와 얼차려를 당한 박 이병은 결국 고참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할 것을 결심하게 된다.

박 이병은 이날 밤 위병소 근무를 선 뒤 24일 새벽 0시10분께 탄약고에 보관돼 있던 M16 소총 2자루와 실탄 140발, 탄창 7개(탄창당 20발들이)를 몰래 빼냈다.

이날 새벽 5시55분까지 범행 실행 여부를 고민하던 박 모 이병은 김 모 상병으로부터 근무교대와 관련해 심한 질책을 받았다.

박 이병은 1시간쯤 지난 새벽 6시50분경 마음을 굳히고 관물대에 있던 자신의 소총과 이미 절취한 소총에 탄창을 넣고 평소 가장 미워하던 김모 병장이 자고 있던 왼쪽 침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자동으로 놓인 M16에서는 총알들이 난사된다. 이후 복도에서 탄창을 교환한 뒤 다시 내무반에 들어와 위협사격을 하며 생존 병사들을 페치카 옆으로 모이게 했다.

양손에 소총을 든 박 이병은 도망을 가던 석모 하사와 박모 병장 등 3명에게 또다시 총을 쏜 뒤 내무실에 있던 나머지 병사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도망치는 동료들을 쫓아 상황실 문 앞까지 달려가면서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이 사고로 8명의 병사가 숨을 거뒀고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박 이병은 곧바로 도주했고 결국 자수를 했다. 군사재판에 회부된 박 이병은 1심에서 살인, 살인미수, 상관살해미수, 군용물 절도, 항명, 직무유기 등의 혐의를 받아 사형을 선고받았고, 2심에서도 그 형이 그대로 적용됐다.

당시 판결문은 "피고인만 가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이 아니라 지적 받은 병사들은 가끔 상급자로부터 가벼운 얼차려나 구타를 당해왔다"며 "범행 전날 피고인이 당한 구타도 감내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판결문은 이어 "실탄과 탄창을 절취 관물함에 은닉하는 등 범행준비 과정이 치밀하고 용의주도했다"며 "피해자들이 반항을 할 수 없는 기상시간 직전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사형 선고 이유를 덧붙였다.

판결문은 박 이병에 대해 "평소 화목하지 못한 집안과 누나의 대학입학 실패 등 가족들이 계속되는 불행에 장남으로서의 책임감과 좌절감을 느껴왔다"며 "허약 체질 때문에 각종 훈련이나 구보시 동료들에 비해 뒤처졌다"고 밝혔다.

디지털뉴스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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