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허탈한 판교 대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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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민 경제부 기자

경기도 분당에 사는 김모(43)씨는 요즘 아파트 시세만 보면 울화통이 치민다. 무주택자인 김씨는 2001년 6월 정부가 서울 강남에 버금가는 신도시를 판교에 건설하겠다는 발표를 믿고 판교 분양을 기다렸다.

정부는 지난해 말 2005년 6월 1차 분양을 한다는 일정과 함께 무주택자의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25.7평 이하 아파트의 분양 최우선 순위를 ▶성남시에 거주하는▶40세 이상 세대주로▶10년 이상 무주택인 사람으로 한다는 자격 요건까지 발표했다. 그동안 서울이나 성남.수원 등에서 수많은 아파트 청약 기회가 있었지만 정부가 제시한 최우선 순위 요건에 든 김씨로선 판교 분양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판교 분양은 2월 17일 부동산 대책 발표 때 아무런 예고도 없이 11월로 일괄 연기됐다. 그래도 정부를 믿고 기다린 김씨는 지난 17일 정부가 다시 판교의 개발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하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판교의 25.7평 초과 아파트용 택지의 분양을 보류하는 바람에 분양 일정은 최소한 3~4개월 더 늦춰지게 됐다. 그 사이 아파트 값이 또 얼마나 뛸지 김씨로선 불안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개발 방식이 어떻게 바뀌는지, 중대형 평형 공급은 어떻게 되는지 등에 대해서도 정부는 "확정된 게 없다. 8월 말까지 발표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김씨는 "지금 와서 판교 분양을 포기하고 분당이나 용인의 아파트를 사자니 값이 너무 뛰었고, 최우선 순위를 포기하고 다른 아파트 분양에 청약하는 것도 억울하다"고 하소연한다. 김씨와 같은 25.7평 이하의 최우선 순위 청약 대기자는 6만8000명에 이른다. 성남시에 사는 25.7평 초과 청약 대기자도 13만2000명에 달한다.

이것저것 해 보다 안 되면 말고 식으로 신도시 계획을 멋대로 바꾸면 피해를 보는 사람은 결국 집 없는 서민이다. 김씨 같은 이들에겐 "집 없는 서민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정부의 얘기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정경민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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