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진 전문기자의 부동산 리포트] 공급 물량 확대보다 가수요 차단이 급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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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부동산 전문가가 이렇게 많은지 정말 몰랐다. 신문.방송.잡지.인터넷 등에 등장하는 수많은 부동산 전문가를 보고 이래서 우리가 '부동산 강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전공 분야도 아닌 데다 평소 부동산에 대해 별다른 식견이 없는 것 같았던 인사들이 자기 나름의 논리로 한마디씩 하는 것을 보고 20여 년간 부동산 분야를 담당해 온 필자는 이 직업을 그만둘 때가 됐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박식한 부동산 전문가들이 대거 포진돼 있는데도 왜 부동산 시장은 안정되지 않을까. 정부가 이들의 주장을 귀담아 듣지 않아서 그런가. 이들이 대체로 지적하는 내용은 "왜 공급확대 정책을 쓰지 않고 수요를 억제하려고 드느냐는 것과 세금 강화는 오히려 부동산값을 부추기는 정책이고 따라서 각종 규제를 풀어 시장기능에 맡기라"는 얘기들이다.

이들의 말대로 하면 골치 아픈 부동산 문제는 금방 해결될 것 같은데 정부는 왜 실행에 옮기지 못할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서다. 공급 확대. 정말 좋은 방안이다. 집값 상승을 주도하는 서울 강남 아파트값을 잡기 위해 강남보다 훨씬 좋은 환경의 아파트를 많이 내놓으면 효과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 급한데 각종 인허가 절차를 빼고라도 공사기간만 3~4년 걸리는 사업을 추진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공급 확대는 평소에 할 사안이고 지금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잡는 일이 우선이다. 설령 공급 확대 계획을 내놓는다 치자. 규제 완화에 따른 기대심리로 아파트가 준공되기까지 투기 열풍에 휩싸일 게 뻔하다. 이는 노태우 정부가 집값 폭등 사태를 잡기 위해 추진했던 수도권 5개 신도시 건설계획에서 톡톡히 경험하지 않았던가. 대대적으로 물량을 쏟아냈는데도 2~3년간 집값.땅값이 더 올라 얼마나 당혹했느냐 말이다. 물론 완공 주택이 줄줄이 나오면 집값이 일부 떨어지는 현상도 벌어졌지만 상승 폭에 비해 하락 폭은 코끼리 비스킷에 불과했다.

공급 확대 주장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전국에서 총 240만여 가구가 건설됐고 서울에서도 51만3000여 가구가 분양됐다. 특히 서울의 경우 예년과 비교할 때 엄청난 물량이 쏟아졌는데도 집값이 폭등한 이유는 뭘까. 돈 놓고 돈 먹는 머니게임이 판을 치는 가수요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 실패'라는 가혹한 비판을 받으면서도 가수요 억제에 무게를 둔 종합대책을 마련하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저금리 영향 등으로 불어난 엄청난 가수요를 차단하지 않고는 아무리 공급을 늘린다 해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지금의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정부의 정책방향은 제대로 잡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실수요를 살릴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점은 잊어서는 안 된다.

최영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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