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황혼이혼과 노년 준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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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20년 이상 함께 산 부부의 이혼율이 1981년에 비해 무려 네 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한다. 이런 통계청의 발표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이 있어 흥미롭다. 오랫동안 부부 문제를 상담해온 사람들은 "이미 예견된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일반인들은 "놀랍고 위기감까지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의 경우와 비슷하게 황혼이혼 청구자의 80%가 여자라는 점도 반응의 차이를 불러오는 듯하다.

황혼이혼에 대해 좋고 나쁨을 가늠할 수는 없다. 오히려 불가피한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여 해결책을 찾는 게 더 바람직하다. 저출산율, 노령인구 증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 1위라는 우리나라 현실을 고려할 때 황혼이혼은 홀로된 노인(이혼 또는 배우자 사별로 인한) 문제의 해결책을 서둘러야 함을 일러준다.

늘어나는 황혼이혼을 다소라도 줄이기 위해선 부부의 갈등 해소와 예방에 가족과 사회, 특히 매스컴의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 국내는 물론이요, 해외 어느 곳에 가서도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 수 있도록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현대에 맞고 미래지향적인 올바른 남편 교육을 해주는 인간문화운동을 가정.학교.사회.매스컴에서 전개해야 한다.

현실에 맞고 미래지향적인 부부 관계는 상호 협조하고, 존중하고, 보완하고, 상대의 능력과 잠재력을 인정해 주는 동반자적.인간적 관계여야 한다. 남자이고 가장이기 때문에 존중돼야 하고 가족이나 여자는 남자가 보호하고 교육해 줘야 할 대상이기 때문에 자신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가부장제 의식과 남성우월 의식, 전통적 성역할론 등 남성 중심의 반편 문화에 길든 의식을 지니고 있는 한 아내로부터 이혼을 요구당하는 불행한 남자가 될 수밖에 없다.

역사의 흐름을 인간의 힘으로 되돌려 놓을 수 없고 물의 흐름을 역류하게 할 수 없듯이 갈수록 개인의 삶을 중요시하는 사회의 흐름 또한 막을 수 없다. 황혼이혼의 증가는 노년에 홀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이 늘어감을 의미한다. 더욱이 현대 의술의 지칠 줄 모르는 발전은 수명의 연장을 동반해 노년에 홀로 지내야 할 기간은 더욱 길어지게 된다.

그러나 홀로된 노인들이 가족 속에서 느끼는 고독감은 시간과 함께 커져 가게 마련이다. 혈연가족만 강조해서는 이들의 고독감을 가중시킬 뿐이다. 사회공동체적 의식 확대 및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혈연가족 속에 한 구성원으로 살아야 행복한 사람'이라는 전통적 사고방식을 바꿔야 할 때다.

노인이라도 자기관리(자기 먹는 음식 준비, 빨래, 청소)를 할 수 있는 건강을 지녔다면 축복받은 삶이다. 자녀나 가족의 도움을 받고 의존해 사는 사람이 복 많은 노인이라는 이제까지의 사회 의식도 달라져야 한다. 자생력을 가지고 생활하는 어른들을 가치 있는 삶을 사는 분으로 존경하고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전통적 혈연가족생활만 강조해서는 홀로 살아가야 하는 노인들의 불행감과 고독감만 자극할 뿐이다. 노인 자살을 방지하는 첫걸음은 다양한 삶의 형태를 인정하고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것이다. 일본 등에서 이미 운영하고 있는 재택복지서비스(주민 참가형, 사회복지회 운영, 협동조합 운영, 국가.지방자치단체 설립)제도를 도입해 집에서 홀로 거주하는 노인들을 정기적으로 찾아가서 서비스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선현들은 행복과 불행은 자기에게 달렸다고 했다. 배우자와 함께이거나 아니라거나 하는 것이 노년의 행복과 불행을 견주는 가늠쇠가 될 수 없다. 고독감이나 불행감을 느끼지 않고 보람 있고 충만한 노년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고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다행히 우리 사회에는 평생교육기관, 사회단체, 은퇴자협회 교육프로그램 또는 노인대학 등 시니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이 많다.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의미로 적극 교육에 참여한다면 보탬이 될 것이다.

양정자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장.법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