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비즈] "이제 내게 남은 과제는 가족과 멋지게 쉬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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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패션업체 ㈜나산을 되살린 백영배(60.사진) 법정 관리인이 회사를 떠난다. 그는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며 "모두가 아쉽다고 생각할 때가 떠나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백 관리인은 1999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나산을 맡아 6년 째(3회 연임) 이끌고 있다. 98년 6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던 이 회사는 그의 취임 첫 해 영업이익 2억원을 낸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말까지 매년 179억~409억원 대의 영업이익을 냈다.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부채비율은 226%로 떨어졌다. 이 같은 경영성과로 백 관리인은 2002년이후 3년 연속 법원이 뽑는 '우수관리인'이 됐다. 3000만원씩의 특별보수도 받았다.

법원이나 회사는 모두 그가 다시 연임할 것으로 짐작했다. 이제 회사 매각을 위한 공개입찰 절차만 남아 있어 그가 계속 일을 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그는 임기가 만료되는 이달 말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관리.회생.성장을 담당했던 CEO가 정리까지 잘 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 사퇴의 변이다. 임직원들은 "백 관리인은 오너보다 더 열정적으로 일한 CEO"라고 입을 모았다. 그는 법원에서 받은 특별보수로 주식을 사 직원들에게 나눠주는가 하면 주말마다 전국 500여 개의 대리점을 샅샅이 돌았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회사에 정이 들어 그가 회사를 남의 손에 넘기는 일까지는 하기 싫은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백 관리인은 효성그룹 출신이다. 33살에 그룹에서 최연소 이사가 됐고, 이후 부회장까지 승승장구했다. 외환위기 당시 효성 바스프 매각 등 그룹의 구조조정 일에 앞장섰다. 그는 효성의 경영이 안정될 무렵 법원의 제안을 받고, 곧바로 나산으로 출근했다.

그는 "38년 간 단 하루도 쉰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가족들은 이번에 그가 쉬겠다고 하자 믿지 않았다고 한다. 백 관리인은 "이제 내 과제는 가족들에게 멋지게 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라며 "남은 20~30년 동안 무엇을 할지 쉬면서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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