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이야기] 홈쇼핑 옷 화려해진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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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주름을 잔뜩 잡아 풍성한 느낌을 주는 풀스커트는 올 봄 패션의 주요 코드 중 하나였다. 이 스커트는 TV홈쇼핑이 히트시킨 대표적 패션이다. 원래 국내 거리 패션을 이끄는 원동력은 주로 동대문시장에서 나온다. 그러나 이 스커트는 거꾸로 TV홈쇼핑에 먼저 소개된 뒤 일주일 뒤 동대문 시장에 상륙했다.

이른바 '홈쇼핑 패션'이 이 시대 패션코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TV홈쇼핑업체들이 유명 디자이너를 동원해 전용 브랜드를 만들거나 외국 디자이너를 고용해 의류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홈쇼핑발 유행'도 나오게 된 것이다.

홈쇼핑 의류는 아직도 싸구려 패션의 대명사처럼 통한다. 홈쇼핑 출범 초기 텔레비젼 화면에만 그럴 듯하게 보이는 의류를 팔아 반품사태를 빚었던 인상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구김방지 면바지 3종 세트'와 같은 막 입는 이지웨어가 대박을 쳤다. 이 상품은 99년 첫 전파를 탄 이래 지금까지 홈쇼핑에서만 1000만 벌 이상 팔렸다. 이런 상품의 득세는 홈쇼핑 패션이 싸구려 이지웨어라는 이미지를 굳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홈쇼핑업체들은 그간 패션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2000년대 들어 유명 디자이너와 제휴해 홈쇼핑전용 브랜드를 만들었다. GS홈쇼핑의 '론'(정욱준), CJ홈쇼핑의 '카루소'(장광효), 현대홈쇼핑의 '쉬퐁'(임태영) 등 스타급 브랜드도 나왔다. 그러나 상당수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GS홈쇼핑 신진호 과장은 "홈쇼핑 소비자들은 디자이너의 명성이나 작품성보다 그때그때 바뀌는 유행을 얼마나 잘 반영했는지를 보는 경향이 있다"며 "이 때문에 개성이 강한 디자이너 브랜드는 오히려 잘 통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따라서 홈쇼핑업체들은 아예 외국디자이너를 고용해 해외 패션잡지에 나온 트렌드를 반영한 상품을 내놓기도 한다. '베로니카'(GS홈쇼핑), '에프지앙'(우리홈쇼핑)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홈쇼핑패션은 유행에 가장 민감하고 변덕스러운 패션 소비층을 겨냥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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