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낮은 수준 두 가지 합의" 노 대통령, 회담에 불만 비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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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직후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는 회담장인 상춘재 앞 녹지원에서 보도진에 설명 시간을 가졌다. 노 대통령은 이날 ▶역사공동연구위원회 산하의 교과서위원회 신설▶제3의 추도시설 건립 검토 등 두 가지 합의사항을 설명하기 전 "아주 낮은 수준의 두 가지 합의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 합의는 오늘 대화 내용에서 조율됐다기보다는 양국의 외교채널과 여러 차례 간접대화를 통해 사전 조율된 결과"라고 덧붙였다. 회담 당일의 성과에는 불만족스러운 심경을 내비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노 대통령은 당초 "고이즈미 총리는 새 추도 시설에 대해서는 일본 국민 여론 등 제반 사항을 고려해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갑자기 "맨 마지막 문구를 다시 정정해야겠다"며 "사전에 긴밀히 조율된 문장이라 한 자라도 틀리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검토하겠다는 것이고 '약속'이라는 말은 잘못 들어간 것"이라고 수정했다.

이어 그는 "그 약속이란 말이 들어가고 안 들어가는 게 실제 어떤 뜻의 차이가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양국 외교 실무진의 사전 협의 과정에서 논박이 있었던 단어였음을 드러낸 것이고, 일본 측의 실천 의지에 의문을 표시하는 의도적 언급으로 해석됐다. 노 대통령은 "내가 이렇게 조심스럽게 내용을 전달하듯이 이번 회담은 매우 조심스러운 것이었다"며 회담 내용을 전했다.

이어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이 반성할 것은 반성하며 그 위에서 미래를 향해 솔직하게 대화하는 게 양국 신뢰우호 관계 발전과 강화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한다"고 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역사 문제에 대한 노 대통령의 의견을 매우 솔직하게 잘 들을 수 있었다"고도 했으나 핵심 쟁점인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언급하지 않고 슬쩍 넘어갔다.

이날 고이즈미 총리는 "회담 중 일본과 한국에서 활약했던 시인인 손호연이란 분에 대해 말씀드렸다"며 "그분의 시 중에 '절실한 소원이 나에게 하나 있지. 다툼 없는 나라가 되라는'이라는 구절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 노래는 손호연씨의 마음뿐 아니라 양국민의 희망이고 바람"이라며 "나도 그런 마음을 갖고 양국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2003년 별세한 손씨는 일본에서 와카(和歌, 일본 단가) 시인으로 활약하며 양국의 이해 증진에 기여했으며 1998년에는 일본 천황의 특별 초청을 받기도 했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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