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청와대서 한·일 정상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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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20일 청와대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열고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와 북핵 문제 등 양국 관계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 특히 양국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역사 교과서 왜곡 등 양국 간 갈등 현안을 의제로 다룰 예정이어서 회담 결과가 주목된다.

청와대 생각은
"역사인식 문제 할말 다 하겠다"
북핵 협력은 쟁점 현안과 분리

◆ 한국 "할 말 다할 것"=노 대통령은 20일 고이즈미 총리와의 정상회담 차림으로 넥타이 정장을 택했다. 이번 회담은 당초 노 타이 차림의 셔틀 외교로 잡힌 일정이었다. 그러나 냉랭한 양국 관계를 감안, 정장 스타일로 의전이 확정됐다. 장소 또한 그간의 제주.가고시마처럼 지방 휴양시설이 아닌 청와대 상춘재로 잡혔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 "넥타이를 매는 동안 나는 자기 생각을 절제하고 긴장을 유지한다"며 "그 같은 상징으로 넥타이를 맨다"고 했었다. 회담 직후 1시간 30분간의 만찬 역시 정상회담 배석자만 참여하는 워킹 디너(업무 만찬)로 진행된다.

휴일인 19일 노 대통령은 관저에서 각종 자료.보고서를 읽으며 준비에 전력했다. 이번 회담은 구체적 의제를 설정하지 않고 포괄적이고 격의 없는 논의를 할 것이라고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전했다. 그는 "사전 의제 조율 실패가 아니라 양측이 논의 주제를 명확히 아는 상황이라 자유로운 형식을 택한 것"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이에 따라 양국 간 핵심 쟁점인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등 '역사 인식'에 대해 솔직히 거론하고, 할 말은 다 하겠다는 입장을 정리했다고 한 핵심 참모는 전했다. 이 참모는 "최대 현안인 일본의 역사인식을 덮어놓고 양국 간 협력에만 초점을 맞추지는 않을 것"이라며 "어렵게 만나는 데다 양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노 대통령은 자기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두 시간의 회담 내내 긴장이 감돌 수밖에 없게 됐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와 관련, "회담 막판까지 실무협상이 계속될 것이며, 희망을 갖고 협상 중"이라고 밝혀 결과가 주목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가시적 성과가 없더라도 노 대통령이 고이즈미 총리에게 직접 근본 문제에 대한 인식을 전할 기회를 갖는 것은 길게 봐서는 의미가 적지 않다"고 했다.

독도 문제는 이미 일본 측 실무진에 "현안도 아닌 문제의 제기는 비우호적 처사이며 성과도 없을 것"이라는 우리 입장이 전달됐다는 전언이다. 정우성 대통령 외교보좌관도 "명확한 우리 영토는 의제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북핵 해결을 위한 협력은 쟁점 현안과는 분리될 전망이다.

노 대통령은 6.11 한.미 정상회담과 정동영 장관의 김정일 위원장 면담 내용을 고이즈미 총리에게 설명해 줄 예정이다.

일본의 기대는
야스쿠니 참배는 가급적 피하고
북한핵 대책 논의에 집중하기로

◆ 일본, "북핵 문제에 집중했으면"="결론도 나지 않을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는 가급적 피하고 싶은 것이 본심이다. 그보다는 북핵 문제 대책을 논의하는 게 건설적이지 않은가."

정상회담 준비에 바쁜 일본 외무성 관계자의 솔직한 답변이다. 한.미 정상회담이나 '김정일.정동영 회담'결과 등을 소재로 회담이 진행됐으면 한다는 바람이다.

야스쿠니 문제에 대해 양국이 견해차를 좁힐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참배를 계속하겠다는 고이즈미 총리의 소신이 워낙 강한 탓이다.

그 때문에 일본에선 "이미 외교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졌다"고 판단하는 사람도 많다. 외무성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작성해 총리에게 제출하는 응답요령에 야스쿠니 항목은 포함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두 번 다시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러 가는 것이지 A급 전범을 추모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럴 경우 직설화법을 구사하고 논쟁을 좋아하는 두 정상이 치열한 언쟁을 벌이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 측은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양국 역사 교과서 공동연구 ▶한국인 징용자의 유골 봉환▶한국인 원폭 피해자에 대한 수당지급 절차 개선 등을 약속할 방침이다. 그러나 일본의 제안은 한국의 요구나 기대수준에 크게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자유무역협정(FTA) 등 경제협력 문제에 대해선 지금 분위기로 볼 때 크게 진전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일 관계를 한꺼번에 복원시키기는 어렵지만 어려운 시기에도 양국 정상외교가 끊임없이 가동됨을 보여주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기대도 있다.

최훈.박신홍 기자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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