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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가 임대주택 부도 피해 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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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부가 임대아파트 공급 확대 정책을 펴면서 민간건설 임대아파트가 전국 곳곳에 지어졌다. 그 뒤 영세건설업자들이 자금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논바닥.산자락 땅을 헐값에 매입한 후 지방자치단체에 임대사업 승인을 얻어 국민주택기금을 타내는 데 혈안이 됐다.

그 결과 10여 년간 40만 가구의 민간건설 임대아파트가 공급됐으나 그 가운데 30만 가구가 부도 상태에 빠져 서민들의 쪽박을 깨고 있다. 이런 잘못된 임대주택 공급 정책에는 건설업자만이 아니라 지자체도 편승했다. 임대아파트 사업 승인권은 지자체에 있다. 임대사업자는 사업 승인 요청서를 지자체에 제출할 때 입주자 모집 공고안을 첨부하게 돼 있다. 지자체는 이 요청서를 검토해 사업 승인을 하고 국민주택기금 지원 절차를 밟는 것이다.

임대주택법 시행규칙 제2조의 3(분양전환가격 등의 공고)에 따르면 입주자 모집 공고안에는 모집 공고 당시의 주택가격, 임대 의무기간 및 분양전환 시기, 분양전환 가격의 산정 기준, 분양전환 시의 수선과 보수의 범위,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의한 보증금의 회수에 관한 사항이 반드시 들어가 있어야 한다.

이 가운데 보증금의 회수에 관한 사항이 임대사업자가 부도났을 경우 임차인의 보증금을 보호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장치다. 그러나 많은 단지의 입주자 모집 공고안을 보면 지자체가 이 조항의 포함 여부를 전혀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즉 지자체들은 사업 승인 과정에서 입주자의 보증금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임대사업자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완전히 무시해 버린 것이다. 지자체와 지방건설업체의 유착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여기다 양산.아산.이천 등지에서는 지자체가 준공검사가 끝나지 않은 임대아파트에 가사용 승인을 내주는 바람에 수도와 가스 시설도 제대로 되지 않은 집에 임차인을 입주케 하고, 주민등록 이전 신청까지 받아 주었다. 부도 직전에 빠진 임대사업자가 마무리 작업을 하지 않은 채 입주민의 보증금 가운데 잔금을 받아내기 위해 지자체에서 가사용 승인을 얻어낸 것으로 보인다. 만일 가사용 승인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부도가 났다면 임대사업자가 가입한 이행보증보험을 판매한 대한주택보증㈜은 손실을 볼 계약금분을 입주민에게 지불했을 것이고 더 이상의 입주민 피해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건설업체와의 유착에 빠진 지자체는 건설업자의 부도 경고에 놀라 가사용 승인을 서슴없이 내줬다. 이런 잘못을 저지른 지자체는 아직도 부도임대아파트 주민들의 피해를 보상할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국민은 이제 행복권을 찾기 위해서라도 주민을 우습게 아는 지자체 장들에게 엄중한 심판을 내려야 할 것이다.

이선근 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