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남편이 바람피울까 걱정인 전업주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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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외도는 남자의 본능?

Q. (남편이 수상쩍다는 40대 여성) 요즘 남편이 수상합니다. 가을이 아무리 남자의 계절이라지만 부쩍 외모에 신경 쓰는 게 아무래도 바람이 잔뜩 든 것 같아요. 대학생 딸 눈에도 이상하게 보이는지 저보고 ‘아빠 관리 잘 하라’고 할 정도입니다. 친한 고등학교 동창 몇몇이 독서 클럽을 한다기에 착하게 논다 싶었는데 이상하게 클럽 회원끼리 연결된 밴드를 하느라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거예요. 알고보니 외부에서 영입한 여성 회원도 있더군요. 내 남편, 믿어도 되나요.

A. (아내만 바라본다는 윤교수) 사람 심리는 효율적 생존을 위해 발달했다는 가정으로 사람 심리를 바라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예컨대 남자가 늘 새로운 여자를 좇는 건 생존에 적합한 본능이라는 거죠.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많은 여성과 사랑을 나눠야 유리하니까요. 또 남자의 바람기는 유전자에 입력된 생물학적 특징이란 주장도 있습니다. 내가 아니라 내 유전자가 나를 바람피우도록 만들었다며 남자들이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방어 논리로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바람이 남자만의 본능이라면 여성은 바람을 피우지 않아야 할 텐데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성도 바람을 피웁니다. 미국의 성문제 상담가인 이안 커너윌 말을 빌면 여성의 바람은 점점 늘고 있습니다. 특히 경제적 독립을 이룬 커리어 여성에게서 말이죠. 결국 남녀를 떠나 사회적 파워가 바람에 영향을 끼친다는 얘기입니다. 워싱턴대 연구를 보면 연봉 7만5000 달러 이상이 3만 달러 이하보다 외도할 가능성이 1.5배 높다고 합니다.

오늘 사연으로 돌아가서, 남편을 믿을지 여부는 일단 뒤로 제쳐두고 남자의 심리를 먼저 살펴보죠. 가을은 감수성을 자극해 철학적 사고를 하게 만듭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옳은가,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건 아닌가, 인생은 무엇인가, 라는 생각 말입니다. 마음이 붕 뜨면서 뜨거운 사랑을 한번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이어지죠. 남자는 단지 생물학적 욕구 때문에 육체적 바람을, 여자는 공감이 선행되는 정서적 바람을 피운다는데 이는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남자도 공허하고 외롭기 때문에 사랑을 하고 싶어집니다.

02. 바람기 잡을 방법은

Q. 원인이 무엇이든 남편의 바람기가 슬슬 피어오르고 있다는 얘기 같군요.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바람기를 어떻게 잡느냐는 것이겠네요. 가끔 좀 심하다 싶을 때 누구 만나서 뭘 했느냐 물으면 남편은 자신을 의심하는 거냐며 오히려 화를 냅니다. 그러니 더 의심이 가서 한번은 남편 스마트폰을 몰래 봤습니다. 그런데 하필 남편이 그 모습을 본 거예요. 화를 내며 휙 하고 집을 나가 버리더군요. 밤 늦게 돌아오긴 했는데 스마트폰에 비밀번호를 걸어 놨더라구요. 효과적으로 바람기를 잡을 방법은 없나요.

A.『행복한 커플의 비밀』을 쓴 부부 상담가 킴 올리버가 제안한 방법을 소개해 드리죠. 일단 큰 원칙은 남자가 바람 피우는 동기를 줄이는 겁니다. 남자가 바람을 피우는 건 아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랍니다. 그럼 뭘까요. 책에 나온 남자가 바람을 피우는 이유를 한번 열거해보죠. 다양한 성적 경험을 위해, 삶이 무료해서, 누군가에게 존경받고 싶어서, 자유를 느끼고 싶어서, 아내를 실망시키는 스스로에게 지쳐서, 자신을 삶의 중심을 두는 파트너를 원해서, 아내의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을 때 등입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단지 생물학적 야수성만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으로 대접받고 싶은 욕구가 바람피우는 주된 이유라는 거죠.

그럼 바람 예방법은 뭘까요. 아내가 적극적으로 신체적 사랑을 주도하고 표현하는 겁니다. 남자는 자신이 성적 매력이 있다고 느낄 때 자신의 가치를 확인합니다. 다음은 좀 야한 이야기인데, 다양한 방식으로 하라는 겁니다. 남자는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기 때문이죠. 또 남편이 원하는 이미지에 너무 순응하지 말라고 합니다. 많은 남자가 결혼할 때 신사임당 아내를 꿈꾸고, 아내는 그 이미지에 자신을 고정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결혼하고 나서야 진짜 원한 아내상은 신사임당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는 거죠. 결국 아내 역시 처음 이미지를 탈피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다음으론 남편을 지나치게 조정하지 않기, 입니다. 불평과 비난 등 부정적으로 상대를 조정하려 들면 관계를 망칩니다. 대신 얼마나 사랑하고 존중하는지를 남편이 알도록 해야 합니다. 많은 부부가 결혼 후 안정적 관계가 됐다는 생각에 긍정적 관계를 유지하는 노력을 게을리한다고 합니다. 결혼 후에 사랑한다는 말이 더 많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또 하나가 남편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도록 내버려 두는 겁니다. 친구와 시간을 보내든, 취미생활을 하든, 자유를 느끼도록 말이죠. 한 달에 한 번쯤은 누구의 엄마아빠가 아닌 남녀로 만나는 데이트도 꼭 필요합니다. 남녀관계 느낌을 잃지 않도록 말이죠.

03. 진짜 바람 피웠다면

Q. 바람 예방법이라는 게 뭐 특별한 건 아니군요. 그런데 돌이켜보니 실천하는 건 별로 없네요. 한번 노력해보죠. 그런데 만약 바람 피우는 게 거의 확실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잘나가는 사업가 남편을 둔 제 친구 하나는 남편이 바람 피우는 걸 알면서도 확인 사살은 안하고 그냥 둔다고 하더라고요. 기왕 들켰으니 이참에 남편이 이혼하자 할까 봐요. 전업주부라 경제적 문제도 있겠지만 아이들 생각해서 참는 거겠죠. 아무리 그래도 저는 열 받아서 갈라서자 할 것 같은데 말이죠. 바람 피운 남편과 다 터놓고 이야기한 후 갈라서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그냥 꾹 참고 살아야 할까요.

A. 정답이 없습니다.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이 바로 정답입니다. 문제는 때론 내 마음을 알기가 힘들다는 거죠. 그럴 땐 일단 마음만으로 갈라서는 겁니다. 혼자 사는 삶에 대해 그려보고 계획하는 겁니다. 회사를 예로 들어보죠. 단지 이 회사가 싫어 저 회사로 옮기면 대부분 실패로 끝납니다. 지금 삶이 싫어서가 아니라 새로운 삶이 확실히 더 좋아야 행복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이혼 관련 책도 읽고 변호사 등 전문가를 만날 것도 권합니다. 더 사느냐 갈라서느냐는 문제는 감정 이상의 매우 복잡한 법적 문제를 수반합니다.

갈라서는 절차가 남편의 외도보다도 더 고통스러워 스트레스 받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일반 상식과 법 상식은 매우 다르기에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지 말고 꼭 전문가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봐야 합니다. 이렇게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면 보다 객관적으로 내 마음을 확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이혼을 준비하는 경험 자체가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일종의 심리적 복수를 한 셈이니까요. 한 주부는 10년 후 이혼하겠다고 마음 먹고 남편 몰래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5년 만에 원하던 돈을 다 모았는데 굳이 이혼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죠. 남편이 불쌍하게 보여서 말입니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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