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남북관계 정상화와 김정일 면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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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평양에서 열린 6.15 통일대축전에 남북 당국이 참가함으로써 고위급 대화의 문이 열렸다. 북측이 남측 당국을 환대하고 남북 당국이 장시간 한반도 정세를 논의한 것은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진전의 좋은 조짐이다. 특히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면담은 정체됐던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한반도 위기국면을 대화국면으로 전환하는 획기적 전환점을 마련하는 의미가 있다.

김 위원장이 정 장관을 만난 것은 북한 내부적으로 남북관계 원상회복과 북핵 해결의 큰 방향을 잡은 것을 시사한다. 북한은 지난 2월 10일 '핵보유 선언'이라는 말로 위기조성 전술의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고 북.미 핵협상을 시도했다. 그러나 미국으로부터 '한반도 위기설'과 북핵 문제의 안보리 회부 및 제재가 언급되자,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상황이 발전하는 것을 막고자 5월 중순부터 북.미 접촉과 남북대화를 시도하면서 위기국면을 대화국면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연장선에서 이번 통일대축전에 남측 당국 대표단을 받아들이고 김 위원장이 정 장관을 극적으로 면담함으로써 북핵 해결의 의지를 국제사회에 과시하는 상징적 효과를 보여주었다. 지도자 중심의 유일체제라는 북한 체제의 특성상 김 위원장이 전면에 나섰다는 것은 북핵 해결의 큰 방향을 잡았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정 장관의 이번 면담은 김 위원장의 전략적 결단을 촉구하는 의미가 있다.

정 장관은 위기 극복을 위한 6.15 선언의 중단 없는 실천을 강조하면서 한반도 냉전 종식을 위한 장애 제거를 위해 노력할 것을 북한 지도부에 호소했다. 정 장관은 북핵 문제 해결시 안전보장과 북.미 간 '보다 정상적인 관계개선' 등 한.미 정상회담 합의 내용과 우리의 '중요한 제안'을 북한 지도부에 설명하고 '전략적 결단'을 촉구했다. 이로써 지난해 6월, 3차 6자회담 이후 위기로 치닫던 한반도 정세가 안정화하고 북핵 문제를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평양에서 제15차 남북 장관급 회담이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 회담이 서울로 이어지면 10개월 동안의 긴 정체기를 마감하고 남북관계 진전을 보다 가속화할 것이다.

남북관계가 진전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를 마련한 것은 6.15 선언을 통해 공존공영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북한과 국제사회의 갈등 등으로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 개선 노력이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분명 남북관계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철도.도로 연결 등 3대 경협사업의 지속적인 추진은 휴전선을 허물고 남북이 공유한 땅인 '중립지대'를 만들어 전쟁 위험을 감소시키는 긴장완화 효과도 동시에 발휘하고 있다.

남북관계 진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정세가 불안정한 것은 북.미 갈등 때문이다. 북한과 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계속되고 있는 북.미 적대관계를 해소하지 못하고 상호불신과 대립갈등을 지속하고 있다. 남북 간에는 공존에 합의했지만, 북.미 간에는 공존을 합의하지 못했다. 북한이 미국과의 대적관계와 불신을 풀고 공존에 합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남북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미국에 대한 남북한의 입지가 강화된다. 남북관계 정상화로 6자회담 개최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다. 미국의 대북정책 방향이 확정되면 김 위원장이 언급한 대로 7월께 4차 6자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이 커졌다.

6.15 선언의 기본정신은 남북 공존과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해결 원칙의 구현이다. 그러나 북핵 문제로 한반도 문제는 국제화되고 있다. 6.15 선언 발표 5주년을 맞아 남북한 모두 한반도 문제의 외세결정론적 사고에서 탈피해 핵문제의 주도적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