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담도 사업 표류하자 투자 분위기 얼어붙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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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가 한국의 서남해안 개발사업(S프로젝트)을 진행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대표단(delegation)을 구성, 한국 정부의 장.차관급 인사를 만나고 현장 실사까지 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또 싱가포르 현지의 기업인들은 행담도 사업을 한국에 대한 투자의 시범사업으로 간주해 예의 주시해 왔고, 최근 우려의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싱가포르의 세계적인 도시설계 회사인 CPG의 팡토캉 회장은 13일 "지난해 말 IE 싱가포르(해외투자청)가 S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회사들의 모임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CPG는 S프로젝트 추진 계획을 담은 최종 제안서(master proposal)를 지난달 4일 한국 정부에 제출한 회사다.

팡 회장은 "이들 회사는 서울에서 건설교통부.재정경제부 등 정부 부처의 핵심 관계자들을 만나 S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듣고, 전남도로부터 J프로젝트에 대한 소개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에 갔을 때는) 분명 양국 정부 간에 많은 얘기가 오간 상태였으며, 양국 정부로부터 강도높은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양국 정부가 S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밀도 있는 협상을 벌였다는 얘기다. 복수의 우리 정부 관계자는 "대표단이 서남해안 현지 실사까지 마쳤다"고 전했다. CPG가 작성한 S프로젝트 제안서는 사실상의 단일안으로 굳어져 현재 우리 정부가 집중적으로 검토 중이다.

이와 관련, 싱가포르의 한 기업 관계자는 "당시 S프로젝트 대표단은 IE 관계자 3명과 CPG, 싱가포르 에어(항공사), 셈콥(물류회사), DBS(은행), 싱가포르 파워(전력청) 등의 사장급으로 구성돼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들이 만난 부처의 고위 관계자는 장관 또는 차관급 인사였으며, 캘빈 유 대사도 배석했다"고 덧붙였다.

팡 회장은 "CPG가 한국 정부에 낸 제안서의 70~80% 정도만 받아들여도 (기업들이)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행담도 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자 싱가포르 현지 기업들의 태도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EOCN의 조셉 케이시 신 사장은 "행담도 개발사업이 성공하지 못하면 다른 기업도 두려워서 (투자를) 안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싱가포르 기업들은 행담도 개발사업을 (S프로젝트의) 파일럿 프로젝트로 인식하고 있으며, S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한국경영인회 김기봉(JK보험 대표)회장은 "행담도 문제가 터진 뒤 전반적으로 현재 한국에 투자하고 있거나 투자할 만한 사람들이 '얼어붙었다'"고 전했다. 싱가포르에서 선박업을 하는 박모 사장도 "행담도 사업을 S프로젝트와 떼놓고 생각하는 싱가포르 기업인은 없다"며 "'행담도가 있었기에 S프로젝트가 나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고 했다. 그래서 "(싱가포르 기업인들이)'한국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투자는 멈췄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박 사장은 또 "대사가 행담도 개발과 관련, 각처에 편지를 보낸 것은 싱가포르 정부의 특성상 본국과의 교감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싱가포르=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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