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성장잠재력 하락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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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우리의 성장목표는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 이른바 잠재성장률을 근거로 설정된다. 근래에 인플레이션 걱정이 줄어들면서 성장률에 대한 속도제한은 크게 완화됐다. 그러나 실제 성장을 이끌어내는 성장의 모멘텀, 즉 성장활력은 크게 저하됐다.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실제 성장률의 변화와 관계없이 우리 경제의 기본출력인 성장잠재력은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낮아져 현재 4%대를 밑돌고 있다. 특히 근로시간과 노동 투입의 지속적 감소는 성장 모멘텀의 약화를 초래하고 있다.

그러면 왜 우리나라에서 유독 노동 투입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가? 그 해답은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생산성 저하로 노동집약적 내수산업이 위축되고 있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경쟁이 치열해진 개방환경에서 고용창출 능력이 작은 수출제조업에 대한 의존도는 여전히 높은 반면 주된 고용기반인 서비스 관련 내수산업은 생산성 저하로 고용여력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산업 간 생산성 격차로 초래되는 성장잠재력의 저하는 수출 위주의 성장 패러다임이 유지되는 소규모 개방경제에 공통적인 현상이다. 그 결과 수출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환율절상 압력이 커지고 환율 안정에 드는 비용도 커진다. 외환시장 개입 비용으로 국내총생산(GDP)의 3.1%를 부담해야 하는 현실은 수출 위주의 불균형 성장전략의 어쩔 수 없는 대가다.

성장 잠재력의 지속적 하락이 갖는 심각성은 그것이 고용기반의 위축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노동 투입을 늘리고 싶어도 늘리지 못한다. 일자리가 없다는 얘기다. 고령화로 인해 재정부담이 급속도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여건 아래에서 수출산업에만 의존해서는 안정적인 성장이 불가능하다. 세계 11위 규모의 경제가 수출이라는 단발엔진만으로 성장을 계속할 수는 없다. 자체적으로 충분한 성장 추진력이 갖추어져야 웬만한 충격에도 끄떡없는 성장을 구가할 수 있다. 결국 수출 이외의 부문에서도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져야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내수부문의 성장 활력이 살아나지 않으면 미래의 재원을 미리 가져다 쓰는 상황을 피할 수 없고, 이는 미래의 성장기반을 갉아먹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문제는 최근 내수부문에서 나타나는 생산성 개선 노력이 노동 투입을 줄이는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자리를 더 줄여 가까스로 생산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일자리를 줄여서는 생산성 향상의 의미도 없을뿐더러, 오래 지속될 수도 없다. 그렇다고 개방을 포기하고 내수산업을 언제까지나 보호할 수도 없다. 개방의 포기는 성장의 한 축인 수출의 포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국 해법은 개방환경에서 내수부문의 생산성 향상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낙후부문의 개발은 정부가 아닌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 말을 마차 뒤에 두고 앞으로 나가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외환 위기 이후 기업들은 위험기피증후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스스로 낙후부문에 진취적으로 진출할 수 있어야 내수부문의 생산성 향상과 고용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있다. 정부는 기업들이 내수부문에서 활발한 생산활동을 벌일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나 분배구조의 개선도 고용과 성장이라는 인센티브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고용 없는 분배개선 노력은 성장의 탄력만 저하시킬 뿐이다.

수술에 수혈이 필요하듯 돈이 필요한 곳에 돌아야 하고, 그 전제조건은 바로 기회의 창출이다. 투자여건이 미비한 상태에서 보따리만 키우는 위험관리방식으로는 기존의 부를 지키기도 어렵다. 시장의 자율성과 민간의 창의성이야말로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시발점이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