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4. 땡볕 <18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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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예상대로 네 사람이 원대복귀하여 작전에 나가게 되었다. 거의 귀국 날짜가 가까웠던 호남 출신의 얼굴이 새카만 임 병장과 부산 출신의 박 병장 그리고 상등병인 신과 나였다. 우리는 쾅나이 전선의 동쪽 해안에서 내륙으로 나아가는 대대에 배속되었고 우리의 우측은 미군이 서편에는 베트남군이 있었다. 이것을 바탄간 반도 작전이라고 불렀는데 아마도 항구도시 다낭에서 고도 호이안에 이르는 구역의 안전 확보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우리는 대대본부 인원과 함께 마지막으로 상륙하는 LST에 타고 바탄간 반도의 해안에 올라갔다. 해변 가까운 바다에는 함선 두 척이 함포사격 지원을 나와 있었다.

우리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삼 개 중대병력이 작전하고 들어간 뒤 해안에 대대본부의 방석을 구축하는 일이었다. 내륙 쪽을 향하여 교통호를 파고 전위와 후위에 PS철판과 모래주머니로 벙커를 구축했다. 그곳에는 중화기들을 배치하고 전방에는 원형 철조망으로 방어선을 만들고 곳곳에 크레이모어 지뢰를 묻었다. 배후에도 역시 개인호들을 파고 벙커를 지었고 가장 안전한 해변에 본부 벙커와 휴식처를 만들었다. 차례로 일개 중대 병력씩 교대하고 돌아와 본부를 방어하는 임무를 맡았다. 운 좋게도 후발대로 도착한 우리는 한 달 동안 본부 방어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 다음에야 어찌 되었든 한 달의 안전한 기간이 확보된 셈이다.

우리는 밤에만 전방 참호와 벙커에 배치되어 경계 매복을 했고 낮에는 초병 일개 분대만 남아 경계 관측을 하고 대부분은 본부 벙커 부근의 휴식처에서 해골을 굴리면 되었다. 우리 네 사람은 같은 소대에 배치를 받았으므로 당연히 함께 지내게 되었다. 모래땅을 배꼽 깊이로 파고 기둥을 세워 위에다 야자나무 잎으로 지붕을 얹고는 모랫바닥에 레이션 박스와 판초 우의를 깔고 다시 그 위에 부근 민가에서 날라온 부들 돗자리를 깔고는 군용 담요와 라이너를 깔고 덮었다. 초소 매복에서 돌아오면 우선 긴장을 풀고 시원한 해변 바람에 땀을 식히며 오전 내내 잠을 잔다. 그리고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지어 먹었다. 레이션 박스를 뜯어 불쏘시개를 하고 탄통에 쌀밥과 찌개를 끓였다. 전투식량은 미군의 레이션과 한국 군납식품인 케이 레이션이 함께 지급되었다. 레이션은 주로 군것질로 먹고 밥을 지어 케이 레이션의 김치와 꽁치 깡통을 넣거나 레이션 깡통의 햄과 소시지를 넣어서 한.미합동 찌개를 끓여 먹었는데, 나중에 이것이 '부대찌개'의 원조가 되었던 셈이다.

그 무렵 어느 날의 일이다. 그날도 느지막이 일어나 내가 식사당번이라 포탄 통에 담긴 물을 따라 내어 쌀과 찌개를 앉히고 불을 지펴 놓고는 야전삽 달랑 들고 바로 지척에 있는 모래 언덕 위로 올라갔다. 그곳이 볼일 보기에 좋았던 것은 우선 장소가 높직해서 바다가 멀리까지 내다보일 뿐 아니라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기 때문이다. 냄새도 아래로 풍기지 않고 바람을 따라 허공으로 멀리 날아가 버렸을 것이다. 야전삽으로 적당한 구덩이를 파 놓고 쭈그리고 앉아 느긋하게 볼일을 보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니 탄통의 틈으로 김이 거세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뿔싸, 적당한 때에 탄통을 조금 열어 두어야 하는데 저러다가 아까운 찌개가 폭발을 해 버릴지도 몰랐다.

그림=민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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