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unday] 홍콩 TV 보고 놀란 중국인들

중앙일보

입력

최근 홍콩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공항에서 흥미로운 광경을 봤다. 맞은 편 게이트에 상하이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대기하는 승객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중국 본토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TV 앞에 딱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입을 쩍 벌리고 보던 사람도 있었다. 인기 가수라도 나왔나 하고 화면을 보니 새로울 게 없는 그날의 홍콩 시위 소식이었다.

마침 담뱃불을 빌려달라는 중국인에게 물어보니 “중국 본토에선 저렇게 사실 그대로 보도하지 않는데 처음 봐서들 저런다”고 설명했다. 소식 자체를 처음 접했다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생생한 화면이 나오는 게 생소했다는 얘기다.

"시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중국의 안정을 해치고 아무 도움이 안되는 일”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영어가 유창하길래 "외국에서 산 적이 있냐"고 다시 묻자 “미국에 5년 동안 있었는데 솔직히 선진국인지도 모르겠고, 중국보다 나은 게 없더라”고 말했다.

홍콩의 시위대가 공정한 선거를 주장하는 건 전적으로 옳고 지지받아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요구하는 1인 1표 직선제를 채택하고 있는 많은 나라들은 저마다 단기간에 해결될 것 같지 않은 구조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실한 건강보험 제도로 국민 상당수가 아파도 치료를 받을 수 없는 미국, 경기침체와 높은 실업률이 일상화된 유럽, 창의력과 사회 역동성이 결여된 일본 등.

반면 권위주의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며 경제적으로는 물론 정치ㆍ군사적으로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인권 문제를 제기했다 투자 철회라는 철퇴를 맞곤 바로 베이징으로 날아간 독일ㆍ영국ㆍ이탈리아 총리들이 이런 세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중국의 경제성장은 주춤하고 있고, 앞으로 어떤 정치적 혼란을 겪을지 알 수 없다. 인권은 물론 환경ㆍ사회보장제도의 문제도 심각하다. 결국 자신감 넘치는 중국에게 자유민주주의가 우월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선 정부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 밖에 없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했으니 우리는 선진국입네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우리의 시스템이 국민의 행복을 위해 더 좋은 방식이란 걸 입증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 관료주의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보여준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개혁할 줄 모르는 정부를 보면 그래서 한숨이 나온다. 사이버 망명을 초래한 검찰, 폭행과 추행이 끊이지 않는 군, 동양증권ㆍKB금융지주 사태에서 총체적 무능을 보여준 금융감독원 등 최근 불거진 사건들은 전부 공공부문에서 나왔다.

영어로 공직을 퍼블릭 서비스(public service)라고 한다. 벼슬을 얻었다고 으스대는 자리가 아니라 허리를 굽혀 국민이 필요한 것을 조달하는 직업이란 뜻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최근 출간한 책 『정치적 질서, 정치의 쇠퇴』에서 “최고 수준의 정치적 질서를 확립한 선진 민주국가가 이념 갈등과 이익단체에 휘둘리다보면 그 질서가 제공했던 정치적 안정과 번영이 무너지는 건 시간 문제”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를 대입해도 통하는 말 아닌가.

박성우 경제부문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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