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26년 만에 폭탄테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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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핵개발 의혹으로 미국과 갈등을 보이고 있는 이란이 내홍에 시달리고 있다. 대통령선거를 불과 5일 앞둔 12일 이란이 연쇄 폭탄공격으로 충격에 빠졌다. 이란 정보 당국은 대선 혼란을 틈탄 해외 반정부 망명단체나 이라크 출신 아랍 분리주의자들의 소행으로 잠정 결론내렸다. 이란 내 소수민족들도 동요하고 있다. 미국과의 마찰, 다른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 등 외교 문제가 시급한 마당에 내부 문제까지 불거진 것이다. 한국의 중동 내 주요 교역 국가인 이란이 안팎으로 불안해지면서 우리 기업들의 수출전선에도 적신호가 우려되고 있다.

◆ 26년 만의 연쇄 테러=남서부 산유 도시 아바즈와 수도 테헤란에서 12일 5개의 폭탄이 잇따라 터져 최소 10명이 숨지고 70여 명이 부상했다. 1979년 호메이니의 이슬람혁명 이후 26년 만에 처음 발생한 연쇄 폭탄테러다. 이란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슬람 정권의 강력한 내부통제로 연쇄 폭탄테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타미 대통령은 비상각의를 소집하고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각료들은 대선을 방해하기 위한 테러공격으로 규정했다.

◆ 불안한 소수민족=사건 직후 이란의 아랍 분리주의 단체인 '알아바즈 순교자 혁명여단'은 인터넷 사이트에 성명을 싣고 자신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이 단체는 "이란의 점령으로부터 아바즈를 해방시키기 위해 폭탄공격을 가했다"며 쿠제스탄주 주민에게 대선 거부를 촉구했다.

알자지라방송은 13일 "그동안 억눌려 온 이란 내 소수민족들이 대선 정국을 틈타 움직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소수민족들은 개혁주의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8년 만에 물러가고 보수주의 대통령이 다시 등장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다민족 국가=이란은 다민족 국가다. 페르시아 민족은 6800만 전체 인구 가운데 51%에 불과하다. 남부 이라크 국경 지역에는 200여만 명의 아랍 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북서부 지역에는 투르크만족과 쿠르드족이 자치권을 요구하고 있을 정도다. 4월 중순 아바즈시에선 아랍계 주민이 강제 이주정책에 맞서 격렬한 시위도 벌였다. 같은 달 북부에선 이라크 내 쿠르드족 득세에 고무된 이란 쿠르드족이 최대 정치단체를 결성하기도 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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