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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장래를 다시 그려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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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유럽연합(EU)의 24개 기존 회원국, 그리고 잠재적 회원국들은 프랑스의 유럽헌법 비준 거부에 강한 분노를 느끼고 있다. 네덜란드마저 '노'를 선언하자 '유럽 프로젝트'에 대한 불신은 현실로 떠올랐다.

프랑스의 거부는 경제 전망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 것이다. 그 부표(否票)의 규모는 유럽 통합이 사회적 부(富).경쟁력.사회 복지, 그리고 평화에 기여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많은 프랑스인과 마찬가지로 나는 유럽헌법 거부가 가져온 폭풍이 EU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도전 정신을 가지고 기본으로 돌아가는 방식으로 우리는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먼저 EU에 대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들을 얘기하자. EU는 우선 평화를 의미한다. 평화는 유럽을 창조한 우리 선조들의 가슴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던 열망이었다. 평화는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주제다. 전 세계적인 테러와 유럽.미국 간 유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전쟁의 위험이 지나간 것처럼 행동해서는 곤란하다. 유럽의 경계심이 무너진다면 폭력적인 충돌은 곧 현실이 될 것이다. 통합 유럽은 단일 국가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이런 문제에 대응할 수 있다. 게다가 정치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경제적 마찰이 생길 경우 단일 국가로는 국제적 논의의 장을 마련해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EU는 또한 민주적 가치를 상징한다. 1980년대통합은 권위적 통치 체제를 전복시키는 데 기여했다. 90년대에는 동유럽이 민주 체제를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부자 나라들에 EU는 경제적 부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공통된 역사와 문화에 대한 상호 인증이다. 서유럽의 부자 나라들은 이 의무를 저버릴 권리가 없다. 만일 동유럽 국가들이 EU의 규정을 준수한다면 서유럽 국가들은 운명을 함께 하는 일원으로 이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EU는 번영도 의미한다. 최근 EU에 가입한 국가나 곧 EU에 합류할 국가들에는 번영에 대한 보증수표와도 같다. 나라에 따라 정도는 다르지만 경제적 문제가 없는 국가는 없다. 그러나 EU가 꾸려나갈 경제적 사회적 모델은 분명 존재한다. 이 모델이 보여줄 수 있는 경제적.사회적.정치적 틀은 분명하고도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유럽헌법을 거부한 많은 프랑스인이 두려워하는 자유주의적 무정부주의와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바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국가들의 모임' 속에서 합의된 규율과 연대에 입각한 생활의 틀이다.

EU의 원대한 계획 뒤에 부정적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과도한 관료 체계다. 그러나 EU가 흠없는 과정을 통해 성공을 끌어내고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경제 생활을 규정해 나갈 것이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물론 유럽의 지도자들이 보여준 진부한 거래, 예산을 둘러싼 다툼, 그리고 선거 때마다 불거져 나오는 경제적 이기주의도 간과할 수는 없다. 헌법으로 보장된 조약조차 자질구레한 문제 때문에 뜻하지 않은 난관에 부닥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임무는 유럽에 새로운 근거와 새로운 맥박을 제공하는 일이다. 갈 길은 분명 멀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국내정치가 보다 높은 정치적 지향점을 향할 수 있다고 확신해야만 한다.

유럽의 석학, 고위 공무원, 그리고 경제계의 수장들은 힘을 합쳐 새로운 개척자 정신을 유럽에 제시할 수 있는 비전을 만들어 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새로운 이상을 세울 수 없다면 지난 50년간 유럽이 이룩한 모든 성취가 위험에 빠질지도 모른다. copyright:Project syndicate.

니콜라스 텐저 프랑스의 정치행위 연구중심(CERAP) 소장
정리=진세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