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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광고가 음주 조장" 근거 없어…광고금지 정책은 부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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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근 국회에서 신문과 방송매체의 술 광고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다. 개정안의 발의 취지는 술 광고가 무제한적으로 남발돼 음주 조장이 심각하므로 술 광고를 아예 금지해 국민 건강을 증진시키고 술의 폐해를 줄이자는 것이다.

광고를 심각한 음주 조장과 사회적 피해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명백화한 것은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예측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러한 불명백한 근거로 광고를 전면 금지하겠다는 법안이 심의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술 광고 규제 수준은 다른 국가에 비해 결코 낮지 않다. 또 영국.일본.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자율 규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주류 업계가 무제한적인 과잉 광고를 한다는 근거 또한 희박하다. 신문 주류 광고는 3년 전과 비교해 3분의 1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술 광고도 타 상품 광고와 마찬가지로 경기 수준, 사회적 정서, 소비자 동향에 따라 스스로 조절되고 있는 것이다.

갈브레이스는 광고를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소비자의 욕망은 사회를 위해 바람직한 형태로 형성되기도 하고 비도덕적일 수도 있다. 기업은 판매 촉진과 브랜드 이미지 제고 의도로 광고를 활용하지만, 그 과정에서 광고 자체가 불건전한 음주와 비도덕적 행위의 원인이 된다는 증거는 없다. 술이란 제품의 특징상 사회적 문제가 우려될 수 있다며 광고 활동을 철폐하는 것을 음주문화 개선, 국민 건강, 국민경제 이바지로 등식화한 것에 소비자들이 얼마나 공감할까.

소비자 보호와 건강을 위해 술 광고를 전면 금지하겠다는 법안에 갈채를 보낼 만큼 국민의 이념적.지적 수준이 그리 낮지 않다. 대중매체를 통한 기업 커뮤니케이션의 자유를 가로막는 광고 금지가 위헌적 발상이며 불공정한 시장 경쟁과 독과점을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은 청소년도 알 만한 경제상식이다. 기업도 무분별한 광고와 비윤리적 판촉으로 소비자에게 인정받는 브랜드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국민의 뜻을 받들어 일하는 국회에서 국민을 우민(愚民)으로 간주해 술 광고로부터 어리석은 백성을 보호하겠다는 것은 권위주의적이며 사회주의적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광고를 규제 일변도적 시각에서 전면 금지까지 주장하는 의견에는 광고의 가치에 대한 몰이해뿐 아니라 선택과 소비의 중심인 소비자 개인의 지성과 존엄성의 포기가 전제돼 있다. 광고는 자본주의라는 풍요한 화원에 기생해 온 잡초와 같은 존재가 결코 아니다.

아무리 공공성이 중요하며 광고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존중하더라도, 술 광고 자체의 사회적 해악과 주류 산업의 실패의 필연성이 확연한 경우가 아니면 광고 전면 금지 같은 국가적 개입의 정당성은 결코 지지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철영 홍익대 광고홍보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