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미 겨냥 석유가 인상·감산|시리아의 휴전제의는 소 입김 작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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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석유무기화 제1차 오일쇼크를 불러일으킨 중동산유국들의 석유무기화 조치는 제4차 중동전이 한창 치열했던 73년10월16일 단행됐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 등 6개 아랍산유국기구(OAPEC)는 쿠웨이트에서 회동, 원유가의 17%인상을 발표함과 동시에 다음날인 17일에는 『이스라엘이 아랍점령지에서 철수하고 팔레스타인인의 권리가 회복될 때까지 매달 원유생산량을 전월비 5%씩 감산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함으로써 석유의 정치무기화를 분명히 했었다.
석유무기화는 이스라엘의 후원국을 겨냥한 것이었다.
「파이잘」황이 「사다트」에게 전쟁이 개시되자마자 시리아의 휴전압력이 들어오더라도 절대 응하지 말고 전투를 될 수 있는 한 오래 끌도록 충고한 것은 이 같은 석유무기화를 구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리아가 지정학적으로 볼 때 이집트보다 이스라엘에 가깝기 때문에 전쟁에 패배할 경우 시리아가 입는 타격은 더 클 것이라는 점과 「아사드」정부가 처하고 있는 국내 정치적 상황(쿠데타가 계속 터졌던 과거 역사, 수니파와 알라위파간의 국내 종교 갈등으로 인한 사회불안)을 고려할 때 어쩔 수 없는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을 것이다.
실제 휴전후 집계된 군사적 손실을 보더라도 이점은 확실하다. 미정보소식통의 분석은 이스라엘 비행기 1백대·탱크 7백80대, 시리아 비행기 1백55대·탱크 8백60대, 이집트 비행기 1백10대·탱크 5백80대가 파괴되어 시리아의 손실이 제일 컸고 시리아는 보유무기의 절반이상을 잃었다.
시리아의 조기 휴전제의에는 물론 소련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었다.
파이잘의 암살 「파이잘」국왕은 75년3월25일 상오 그의 궁전에서 정신착란증환자인 조카「파이잘·이븐·압둘·아지즈」(당시 28세)가 쏜 흉탄에 맞아 69세로 서거했다. 「파이잘」왕은 그날아침 「모하메드」탄생기념일을 맞아 하례를 받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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