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썰고 사과 자르는 게 분수에요"… 어른을 위한 수학책 낸 김승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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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들, 분수가 어렵다구요? 사실 주방에서 매일 접하는 게 분수입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무를 썰고 사과를 자르는 것, 그게 바로 분수예요"

학원가에서'재밌는 수학강사'로 널리 알려진 김승태(37)씨. 특유의 입담과 유머로 수학을 풀어내는 그는 강남의 유명 학원과 스카이라이프 에듀TV 등의 온라인 강사를 지냈고, 한때 각종 TV 오락프로그램까지 출연한 이른바'잘 나가는'강사다. 관련 서적도 지금까지 10권을 냈다.

그런 그가 이번엔 다소 특이한 책을 펴내는 모험을 했다. 20~30년전 초등학교 교과서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의'젊어지는 산수책'(넥서스북스)이 그것이다. 책은 실버세대를 겨냥해 단순한 산수계산을 통해 평소 뇌를 자극해 치매를 예방하자는 아이디어에서 나왔다."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수학은 입시용일 뿐"이라며 평소 스스럼 없이'수학 장사꾼'을 자처해 온 그에게도 이 책은 좀 특별하다.

"'그래, 딱 이건 내책이다'싶었습니다. 솔직히 책으로 돈을 벌려면 중.고생용을 써야죠. 하지만 그 출판 제안을 받는 순간 올해 70세인 저희 어머니 얼굴의 어른거렸거든요."

평소 1주일이면 책 한권을 쓴다는 그는 이번 책을 만드는데 '이례적'으로 4개월이 걸렸다. 그의 어머니와 함께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의 인세도 어머니 통장으로 입금시킨다고 한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그의 모친은 시장에서 나물을 팔아 자식 셋을 대학에 보낼 만큼'억척스러운'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가 언제부터인가 신문이나 잡지에 난 퍼즐 문제를 열심히 풀고 계시는 모습을 봤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혹 치매라도 걸려 자식들 고생시키기 싫어서…'라고 대답하세요. 노인분들을 위한 수학책을 한번 만들어봐야겠다고 처음 생각한 것도 그때였습니다."

그는 집필전 초등학교 3.4학년 교과서를 탐독한 뒤 180여가지 문제를 만들었다. 그리고 어머니의'감수'과정을 거쳤다. 어머니가 풀지 못할만큼 어렵고 까다로운 문제는 원칙적으로 모두 걸러내고 80여개 문항을 추렸다. 하지만 예외도 있었다.

"어머니가 이상하게도 분수 문제는 전혀 풀지 못하시더라구요.'분수 배울 시기가 농번기였는데 동생 엎고 다니느라 학교에 못갔다'는 거예요.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즉석에서 분수의 개념을 가르쳐 드린 뒤 책에도 집어 넣었죠."

김씨는 이 문제들을 실버세대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독특한 재미를 섞어 문항화 했다.

예컨데 숫자를 말로 풀고, 말을 숫자로 옮기는 문제의 경우 할아버지와 손자와의 대화 형식을 채용했다. 손주가 '오만 삼백'이라고 하면 할아버지가 '50,300'이라고 받아적는 식이다. 비단 산수만이 아니다. 또'긴급 전화번호 외우기'같이 생활에 필요한 문항이나,'인터넷 이모티콘 외우기'같이 손자들과 대화를 늘릴 수 있는 문항도 함께 넣었다.

'어른들을 위한 산수책'이라는 아이디어는 사실 일본에서 시작됐다. 실제로 일부는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낯선게 사실이다. 출판사 관계자는"고령화시대라고 하지만 서적을 포함해 여전히 실버세대용 제품이나 서비스가 보편화되지 않은 게 우리 현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부모님께 선물하려하다가도'혹시 기분나빠하시진 않을까'하고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

김씨는"처음 내 강의를 듣고'술먹고 강의하냐'면서 항의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지금은 호응이 좋은 것처럼 책에 대한 인식도 점점 나아질 것"이라면서"최소한 치매예방한다면서'고스톱'만 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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