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8연승 놓친 박정상의 '깜박 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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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정상을 향해 질주해온 2005년의 기대주 박정상 5단은 현재 다승 1위와 승률 1위를 달리고 있다. 연초 14연승을 거둬 연승부문도 아직까지는 선두.기록 3부문을 모두 석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박 5단이 해프닝에 가까운 착각 한방으로 역전패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는 이 패배로 '다승 1위'에서 '공동 1위' 로 내려왔고 최근 다시 시작된 연승 행진도 7연승에서 종지부를 찍었다. 고대하던 한국리그에서의 첫 승리도 내주고 말았다.

해프닝의 무대는 5일 바둑TV 스튜디오에서 벌어진 농협2005 한국바둑리그 2장전.신성건설의 박정상과 제일화재 김주호의 대결에서였다. 신성건설은 박영훈.김영환.이희성이 제일화재의 조훈현,장주주(江鑄久),백홍석을 잇따라 꺾어 3대0으로 압도하며 이미 승점 2점을 챙겼다.박정상이 김주호를 꺾는다면 4대0 완승에 승점도 3점으로 올라가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박정상에겐 개인적으로 더 중요한 것들이 이 한판에 걸려있었다.박정상은 다승 부문에서 박영훈 9단과, 승률 부문에서는 조훈현 9단과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었다. 최철한 9단이 2003년 다승.승률 양쪽에서 1위를 차지한 뒤 이듬해 국내 3관왕으로 도약했듯이 박정상도 지금 한창 그 전철을 밟아가고 있었다. 바둑은 박정상이 기막힌 수읽기와 두둑한 배짱으로 세 곳의 난제를 모두 해결하며 완승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 봐도 백승이 확정적인 상황에서 사고가 벌어졌다.

<장면도>가 그 수순이다. 백1 잇고 흑2 따낸 다음 중앙 대마를 연결하면 승부 끝. 그런데 박정상은 태연히 백3으로 끝내기를 하지 않는가. 순간 김주호는 흑4부터 10까지 간단히 대마의 명맥을 끊었다. 프로라면 한 눈 감고도 쉽게 볼 수 있는 수순이었는데 박정상은 이를 못봤다. 착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해프닝이었다.

조훈현 9단은 착수 금지구역에 두어 반칙패를 당한 일도 있다. 이럴 때 프로들은 "마(魔)가 끼었다" 고 말한다.

이런 착각은 종종 상승세의 흐름에 찬물을 끼얹곤 한다. 다승.승률 1위를 달리는 박정상이 극히 조심해야 할 대목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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