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유랑 2063일째 …김우중 이번엔 진짜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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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69) 전 대우그룹 회장의 귀국이 이번에는 실현될까? 5년8개월간의 유랑기간 중 심심치 않게 ‘귀국설’이 흘러나왔지만 이번엔 좀 더 구체적이다. 김 회장은 측근·국회의원·변호사·언론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 ‘귀국 결심’을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과거 대우맨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김우중 전 회장의 상징처럼 돼 있는 ‘세계경영’을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검찰에서도 수사자료를 모으고 있는 등 정황으로 볼 때 귀국은 기정사실처럼 보인다. 문제는 시점이다. 일단 여론의 움직임을 주시한 뒤 시점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여론 테스트 중”

이와 관련해 옛 대우그룹 홍보이사였던 백기승 유진그룹 전무는 “귀국 날짜가 정해진 것은 아니다. 문제는 여론이다. 곧 귀국할 것처럼 알려졌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국내에서 분위기가 조성되면 공개적으로 귀국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전 회장에 대한 여론이 우호적으로 흐를 경우 언제라도 귀국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도 “현재 김 회장의 귀국과 관련된 보도가 봇물을 이루고, 전직 대우맨들이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것은 국내 여론을 시험해 보기 위한 것”이라면서 “여론이 한쪽으로 정리되고 나면 귀국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금까지 여론은 김 전 회장에게 그리 부정적이지 않다.

김 전 회장이 귀국한다면 신병은 어떻게 처리될까? 검찰은 “김 회장 처리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이고, 이미 체포영장이 발부된 기소중지자 신분이기 때문에 귀국할 경우 곧바로 신병을 확보해 원칙대로 처리한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2001년 5월 대우그룹 임원들을 41조여원의 분식회계와 약 10조원의 불법대출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은 1999년 10월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뒤 잠적했고, 검찰은 2001년 5월 김 전 회장에 대해 기소중지 결정을 내렸다. 현재 김 전 회장은 인터폴에 적색수배된 상태며, 입국 시 관계 당국에 통보하도록 돼 있다. 이런 상황으로 미뤄볼 때 김 회장은 입국과 동시에 공항에서 체포되는 것이 불가피하다.

검찰 관계자는 “어느 때보다 김 전 회장의 귀국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최근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도 검찰 조사와 그에 따른 처벌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3일 베트남을 다녀온 석진강 변호사는 “김 회장도 대법원의 유죄판결이 난 사건인 만큼 처벌을 감수하고 귀국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김 전 회장 “법적 심판 받겠다”

일단 귀국 후 조사·처벌은 불가피하겠지만 김 전 회장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놓고 당국과 김 전 회장 측간에 모종의 교감이 있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있다. 실제로 베트남 현지에서는 김우중 전 회장이 지난달 말까지 하노이에 머물면서 최측근을 통해 귀국 이후 형사처벌 수위와 재산 반납 정도 등을 조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열린우리당 김종률 의원도 지난달 베트남에서 김 전 회장을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의원은 지난달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지인을 통해 예정에 없이 김 전 회장을 만났다”면서 “김 전 회장은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 이번에 매듭을 짓고 싶은 의지를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또 “김 전 회장은 자신에 대한 국민의 평가를 다시 받고 싶어했고, 앞으로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싶다는 의견도 피력했다”고 전했다.

김 의원은 또 언론과 인터뷰에서 “김 전 회장이 대규모 분식회계 등 잘못된 부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국내 기업들의 세계경영을 선도하며 동남아와 동유럽 시장 개척을 주도했던 것은 분명한 그의 공(功)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 공은 공대로 과(過)는 과대로 냉정한 평가가 내려져야겠지만 과 때문에 공이 묻혀선 안 된다”며 “김 전 회장은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평가가 내려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이 이해찬 총리의 핵심 측근인 점을 감안한다면 비록 사적인 의견이지만 여권 핵심부와 교감 아래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권은 다만 시민단체 등 ‘또 다른 여론’의 추이를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전 회장을 최측근에서 보좌했던 전직 대우그룹 계열사 사장은 “김 회장이 6년 가까이 떠돌이 생활을 한 것은 자신의 잘못이 부풀려져 있다는 것 때문인데 이제 와서 검찰의 기소대로 다 처벌받으면서 돌아오겠느냐?”며 “김 회장에게 덧씌워진 혐의를 벗기는 차원에서라도 일정부분 사면이나 감형이 필요하고, 또 그렇게 얘기가 되지 않겠느냐?”고 의견을 밝혔다.

김 전 회장 측과 당국이 어느 정도 교감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검찰 쪽에 밝은 한 인사도 “이미 지난달 말 검찰 측과 김 전 회장 측 간에 교감이 있었다”면서 “여기에는 구속수사 여부와 향후 처벌의 강도 등 다양한 얘기가 오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정치권 일각에서도 김 전 회장의 사면설이 나오고 있다. 검찰 조사를 통한 처벌 후 사면으로 6년간 끌어온 김 회장 문제를 마무리 짓자는 흐름이다. 현재로서는 ‘귀국→수사→사법처리→국민 여론에 따른 사면 여부 결정’의 수순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업 재개 쉽지 않을 것”

다만 이런 과정을 거쳐 김 전 회장이 사면되더라도 단시일 내에 재기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대우그룹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이 귀국하면 과거 대우 문제를 다시 한번 정리하고 대우에 대한 재평가를 하자는 것이지, 재기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또 “이미 많은 세월이 흘렀고, 여론이 중요한 상황에서 김 전 회장이 다시 과거처럼 사업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여론이 그걸 용인할 것 같으냐?”고 반문했다. 사법처리 가능성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재기를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다만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자문에 응하거나 조언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점쳤다.

하지만 재계의 한 인사는 “현재 아들 선협씨가 골프장 사업을 키우고 있고, 김 회장이 베트남 신도시 개발 등에 모종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과거 대우그룹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재기가 가능할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김 회장과 연락을 취하고 있다는 전직 대우 계열사 사장도 “김 회장이 원하는 것은 명예회복과 노후생활일 뿐”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키는 여론이 쥐고 있다. 하지만 여론이 뜻대로 따라줄지는 미지수다.

김우중 전 회장 해외 유랑 일지

1999년 8월: 대우그룹 워크아웃 결정
1999년 10월 17일: 김우중 전 회장 잠적
2001년 11월: 인터폴 “김우중 독일에서 치료 중” 발표
2005년 4월 29일: 대법원 대우 임원 7명에 23조원 추징.
2005년 5월 29일: 김 전 회장 측근 통해 “귀국 희망” 밝혀

<이코노미스트 7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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