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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정부'의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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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정부가 자장면 값과 목욕 요금까지 일일이 간섭하던 시절이 있었다. 민간은행더러 누구에게는 얼마를 대출해 주고 누구에게는 대출해 주지 말라던 때도 있었다. 담배 가게를 새로 내려면 기존의 담배 가게에서 얼마 이상 떨어져야 한다는 규제도 있었다. 소주 회사는 시.도의 경계를 넘어서 소주를 내다 팔지 못한다는 규제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처럼 보이지만 그때는 그런 일들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먼 옛날 얘기가 아니라 불과 십수 년 안쪽의 일이다. 물론 다 그만한 명분과 이유가 있었다. 서민의 부담을 덜어 주고 물가를 안정시킨다거나, 전략산업을 육성한다거나, 영세 상인을 보호한다거나, 지방 소주 회사의 도산을 막는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한결같이 좋은 의도요, 그럴듯한 목표다.

세월이 흘러 이런 규제와 관행은 사라졌다. 의도했던 목적을 달성했거나 당초의 선의가 퇴색해서가 아니다. 이런 식의 개입과 규제가 효과를 거두지 못했거나, 더 큰 폐해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개발연대에는 공무원의 '보이는 손'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대신해 모든 경제행위를 좌지우지했다. 국민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정부의 '보이는 손'이 밀고 들어왔다. 자연히 공무원들의 일거리가 많아지고, 권한도 세졌다. 정부의 할 일이 많아지면 곧바로 나타나는 현상이 몸집을 키우는 일이다. 새로운 조직이 생기고 공무원 수도 늘어난다. 이른바 '큰 정부'의 등장이다.

그러나 큰 정부의 폐해는 작지 않다. 우선 정부의 몸집이 커질수록 관료주의가 만연하고 효율성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시장이 해야 할 일에 정부가 끼어들면서, 자원 배분이 비효율적으로 이뤄진다. 가장 극단적인 예가 옛소련의 계획경제 체제다.

큰 정부의 더 큰 해악은 부패다. '보이는 손'에 돈봉투가 쥐어지고, 사과상자가 건네진다. 규제 중심의 큰 정부는 부패의 온상이다. 모든 규제가 부패를 부르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부패는 반드시 규제에서 비롯된다. 규제가 없는데도 공무원들에게 선뜻 대가성 없는 돈을 갖다 바칠 마음씨 좋은 기업가는 많지 않다. 큰 정부와 맞물린 부패의 먹이사슬은 곧 부패를 일상화한다.

외환위기를 거치며 규제 완화와 '작은 정부'는 얼마간의 공감대를 형성한 것처럼 보였다. 규제 완화는 실천 여부와 관계없이 대선공약의 단골메뉴가 됐고, 노무현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욱이 노 대통령은 부패 척결을 취임 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아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규제 완화와 부패 척결은 '작은 정부'를 실현하는 데 최적의 토양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돌연 '작은 정부'에의 의지가 실종됐다. 노 대통령은 지난 2월 취임 2주년 국정연설에서 아예 "작은 정부를 공약하지 않는다"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대신 "국민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충분히 하는 정부, 할 일을 가장 효율적으로 하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했다. 문제는 '큰 정부'는 정부가 하지 말아야 할 일까지 비효율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벌써부터 막강한 '보이는 손'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강남 부동산을 때려잡는다며 온갖 새로운 규제와 세금을 총동원하는가 하면, 난데없이 빵가게와 세탁소의 진입자격을 규제하겠다고 나섰다. 전 국토를 개조하겠다며 수도와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추진하는가 하면, 허황된 대규모 개발사업을 이곳저곳에서 남발한다. 이게 국민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이며, 정부가 이 시점에 꼭 해야 할 일인가. 그 사이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비롯한 각종 정부 조직이 신설되고 공무원 수는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이 정부는 과연 '큰 정부'의 비극적 운명을 비켜갈 수 있을 것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김종수 논설위원

*** 바로잡습니다

6월 9일자 중앙포럼 '큰 정부의 비극' 칼럼에서 규제가 풀린 것으로 소개된 담배가게 거리제한 제도는 아직 시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기에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