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 없는 전개에 잘 다듬어진 고운 신 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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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신춘문예, 그것은 하나의 과장이다. 그것도 여느 과장이 아니라 대과의 과장이다.
아니, 어떻게 생각하면 영광의 자리이자 형벌의 자리이기도 하다.
수백 수천을 헤아리는 응모자들 가운데 꼭 한 사람, 한 작품만을 당선의 자리에 앉히는 것이니 영광이라면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으며, 그 두 자리도 아닌 한 자리를 노려 해 마다 해마다 수백 수천의 문학도들이 고배를 마시니 형벌이라면 이보다 더 큰 형벌이 어디에 있겠는가.
심사를 위촉받은 선 자들도 무슨 산삼이라도 캐러 들어가는 심마니처럼 작품 한편 한편에 조심조심 경건(?)한 마음으로 밟아 드는 것이다.
올해도 많은 작품이 응모해 왔다.
예선을 거쳐 선 자들의 손에 넘어온 작품이 2백여 편. 몇 차례의 심사를 거쳐 간추려진 것이「섬, 그리움을 위하여」「겨울아가」「독도」「입춘기」「탄산일우」「소품 삼제」 「입동의 시」등등.
그런데 여기서 한번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올해도 두 가지 작품유형(새롭고자 하여 시조의 율을 깨뜨린 작품과, 정형을 지킨다고 하여 구태의연한 작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조라는 우리시는 시와 가가 잘 접목되어야만 비로소 피워 올릴 수 있는 화목이다. 정신적인 토양인 바탕을 잃어도 안되고, 신품종(새로운 테크닉)개발의 접목을 못해 내도 살아남을 길은 없는 것이다.
「입춘 기」는 좀 답답하고,「소품 삼제」는 조율은 잘 됐으나 새로운 면이 없고,「독도」 는 호흡이 더러 단절되고, 「겨울 아가」는 종장에서 아쉬움을 느끼게 했다.
「입동의 시」김귀남, 「섬, 그리움을 위하여」정일근, 「탄산일우」김경자, 3작품이 남았다. 모두 제 나름대로의 특징을 갖긴 했으나 자리는 한자리다. 「입동의 시」는 잘 풀려 나갔으나 파격이 있었고, 「섬, 그리움을 위하여」는 참신 하기는 하나 신춘문예라는 것을 너무 의식하여 쓴 작품인 듯하여 후일로 미루었다.
「탄산일우」를 당선작으로 뽑은 뜻은 언어의 명징성, 무리 없는 전개, 시조 시로서 잘 다듬어진 고운 신 색까지를 산 것이다.
정완영 박재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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