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교섭의 새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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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금 예상되는대로 내주중에 60억달러 안보경협에 관한 한일실무자회담이 열리면 작년9월의 한일각료회의 이후 긴 동면에 들어갔던 교섭이 5월까지의 타결을 목표로 재개되는 셈이다.
한일두나라 정부는 지난4개월 동안의 냉각기간 중에 서로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어떻게 해서든 안보경협문제는 완전결렬에서 구제되어야 한다는 입장들을 굳힌 흔적이 보인다.
그사이 일본쪽에서는 한일교섭의 주역의 한사람인 외상이 「소노다」 (원전직) 에서 「사꾸라우찌」 (앵내의웅)로 바뀌어 대한교섭에 적어도 스타일상의 변화는 기대되기도 했다.
지난 1개월동안의 외교경로를 통한 대화의 길과 3월의 외상회담을 전제로 하는 실무자회담이 열리게 된 것을 환영한다.
일본의회는 이달 25일부터 예산안심의를 시작하기 때문에 「사꾸라우찌」외상은 다른 각료들과 마찬가지로 의회에 발이 묶인다.
그 사이에 실무자들이 만나 준비작업을 해놓고 3월 외상회담, 5월 정상회담으로 연결시켜 보자는 것이 두나라 당국자들의 희망인 것 같다.
그러나 지난 연말부터 동경에서 간간이 흘러나오는 보도를 보면 실무자회담의 성사자체가 일본측 입장의 기본적인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고, 따라서 교섭전망이 반드시 밝다고만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요미우리(독매신문)의 12월27일자 보도를 예로 들면 일본정부의 관계부처가 협의 끝에 조정한 대한경협의 액수는 12억5천만달러로 되어있다.
그것은 우리가 요청한 안보경협 60억달러, 수출입은행융자 40억달러를 합친 1백억달러와는 너무 동떨어진 액수다.
특히 그 12억5천만달러는 우리의 5차경제사회개발 계획기간 5년과 81년도분 엔차관을 합친 6년분이라니 우리 입장으로는 어림도 없는 규모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엔차관은 재정상의 제약을 받는다. 그래서 엔차관만으로 한국의 요구에 응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기에 한국정부는 수출입은행융자도 공공차관으로 간주하겠다는 선까지 양보를 한 바 있는 것으로 안다.
우리는 과거 여러차례 그랬던 것처럼 다시한번 일본에 대국적·대승적자세로 대한경협문제에 접근할 것을 촉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 동서관계는 70년대의 데탕트가 크게 쇠퇴하고 냉전부활의 징조를 보일만큼 대결과 긴장이 고조되어 있다. 소련의 해군력중에서도 태평양함대가 최대규모라는 사실에 일본이 둔감할 수 없는 일이다. 소련이 북한의 나진항과 베트남의 캄란만을 해군기지화하고 있는 것도 일본에 직접위협이 된다고 하겠다.
지난해 10월28일 미국무성의 「홀드리지」 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가 일본은 한국의 안보경협요청을 진지하게 고려하기를 바란다고 공식입장을 밝힌 것도 미국의 「대한편애」때문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안전과 안정을 위해 한국이 맡고있는 역할을 평가했기 때문이다.
한일실무자회담에 합의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던걸 우리는 안다. 오는 5월「헤이그」미국무장관의 방한, 같은 시기의 미일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일 세나라 간에도 일련의 고위회담이 열리게 되어있다.
한-미-일 삼각협력에서 한일간의 긴밀한 협력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일본은 일본만이 아니라 지역적 이익의 차원에서 신축성있는 자세로 한일교섭에 임하여 이번 실무자회담이 최종적인 합의의 시각이 될 것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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