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잇따른 대형 참사로 일상이 불안하다는 48세 직장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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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소심해진 나, 비정상인가요

Q. (늘 불안한 중년 남성) 48세 직장인입니다. 요즘 한마디로 사는 게 무섭습니다. 지난 봄 여객선 침몰 사고 이후 아내와 가기로 한 울릉도 여행을 취소했습니다. 결혼 20주년에 맞춰 가기로 했던 거라 아예 안 갈 수는 없고, 아내는 해외여행을 가자고 합니다. 하지만 큰 사고에 소심해진 탓인지 올해 비행기 사고로 800여 명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읽고는 비행기도 타고 싶지 않습니다. 게다가 최근 싱크홀 문제가 불거져 이젠 운전하기도 겁이 납니다. 땅이 꺼질까 봐요. 공대 출신이라 늘 새로운 기술이 세상을 더 좋게 해 준다 믿고 살았는데, 이젠 오히려 기술이 사람을 잡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저, 비정상인가요.

A. (웬만하면 불안해 않는 윤교수) 현대 사회를 리스크 사회라고 하죠. 기술문명 발달로 모든 인류가 행복해지는 유토피아를 꿈꿨는데 원전 사고 등 기술문명으로 인한 큰 재앙이 반복되면서 오히려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불안한 게 비정상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엉뚱한 질문 하나 할까요.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가 몇 개인가요. 제 얘기를 하자면 스마트폰 없던 시절엔 상당히 많이 기억했는데 요즘은 달랑 내 휴대폰 번호 하나만 기억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기가 막혔습니다. 기계가 삶의 효율성을 올려주는 건 분명하지만 거꾸로 이와 관련한 능력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2009년 탑승자 228명 전원이 사망한 비행기 사고가 유럽에서 일어났습니다. 비행 센서 결빙으로 잠시 자동조정장치가 해제됐는데 조종사가 실수로 앞으로 밀어야 할 조종간을 뒤로 당기는 바람에 속도가 떨어져 추락했습니다. 자동조정장치가 다시 작동되며 비행 속도를 정상화하려 했으나 조종사가 계속 조종간을 당기는 바람에 추락한 거죠. 사후 조사에서 ‘조종사가 상황에 대한 통제를 완전히 상실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디지털 사상가인 니콜라스 카는 비행기의 자동조정장치가 조종사의 위기 대처 능력을 오히려 떨어뜨려 이런 사고를 일으켰다고 주장했죠. 자동조정장치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기계에 의존하다 보면 이처럼 인간의 기능이 떨어져 대형 참사까지 일으키는 것입니다.

위기대처능력은 이론만 안다고 필요할 때 효율적으로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지식 기억이 아니라 절차 기억이기 때문입니다. 운전을 처음 할 때는 계속 머리로 생각하며 하다가 어느 순간 ‘어, 언제 여기까지 왔지’ 싶을 때가 있습니다. 거의 의식하지 않고 운전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거죠. 이게 절차 기억입니다. 뇌에서 자주 쓰는 신경세포끼리 서로 단단히 연결하게 만들어 거의 자동으로 반응하는 겁니다. 절차 기억을 만들려면 반복 훈련과 경험이 필수입니다. 그런데 기계에만 의존하면 절차 기억 없는 지식만 뇌에 쌓이는 거죠. 스스로 이런 걸 막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02. 기술에 대한 혐오감만 드네요

Q. 지금 하는 일이 공장 자동화와 관련한 로봇 기술 개발 분야입니다. 문제는 최근의 대형 사고 탓에 기술에 대한 혐오가 생겼다는 겁니다. 신기술이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지에 대해서는 이미 확신이 사라졌고, 그러니 일에 대한 열의도 뚝 떨어졌습니다. 심지어 직장에 가기가 싫습니다. 더 황당한 건 일하지 않고 쉴 때도 딱히 행복하지 않다는 겁니다.

A. 무력감이 찾아왔군요. 이 무력감은 기술 중심 가치관이 흔들리면서 찾아온 철학적 고민입니다. 이런 고민 자체가 나쁘지는 않죠. 그러나 고민이 지나쳐 현재의 삶에 몰입할 수 없다면 당연히 행복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의 역설’이란 게 있습니다. 이를 처음 발견한 1980년대 연구를 한번 살펴보죠. 회사 5곳에서 일하는 직종과 직위가 다양한 직원 100명을 모집했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7차례 무작위로 울리는 무선호출기를 줬습니다. 그리고 호출기가 울릴 때마다 짧은 설문을 작성했습니다. 호출기가 울릴 때 하던 활동, 현재 직면한 문제, 활용하는 기술 등을요. 또 동기·만족감·참여도·창의성 등 심리적 상태도 전부 적도록 했습니다. 사람들이 직장 안팎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그런 활동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는데요.

상식적으로는 즐겁게 여가시간을 보낼 때 행복해하고 만족할 것 같은데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여가시간을 보낼 때보다 일할 때 더 많은 행복감과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이 실험을 진행한 심리학자 칙센트 미하이 교수는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사람은 어떤 활동이 우리를 만족시키고, 또 만족시켜주지 못할지를 예상하는 데 서툴다고요. 이를 희망오류라고 합니다.

우리 뇌는 무언가에 몰입할 때 긍정적 감정을 느끼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하는 일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면 쉴 때도 당연히 만족하기 어렵습니다.

03. 숨고만 싶어요

Q. 최근 집에서도 스트레스가 너무 심합니다. 무기력한 모습이 걱정이 되는 건지 보기가 싫은 건지, 아내 잔소리가 점점 심해집니다. 당신만 믿고 사는데, 이제 그만 마음 잡고 열심히 일하라는 얘기가 너무 듣기 싫습니다. 심지어 중3 딸까지 엄마 흉내를 내며 “전엔 집에서도 논문 열심히 읽더니 왜 TV앞에 앉아 예능 프로그램만 보느냐”고 합니다. 모녀가 스테레오로 잔소리하면 긍정적으로 마음이 먹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족과 연락이 안 되는 곳으로 숨고만 싶습니다. 무기력에서 벗어날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A. 무기력에 벗어나 행복하려면 과거나 미래가 아닌 바로 오늘에 몰입해야 합니다. 생각의 20%만 과거나 미래가 차지해도 우리 뇌는 행복을 잘 못 느낀다고 합니다. 이런 저런 방법이 다 안 통한다면 19금 필살기가 하나 있긴 합니다. 눈이 번쩍 떠지나요. 바로 ‘내일 죽어도 그만’이란 자세로 사는 겁니다. 청소년에겐 할 수 없는 얘기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과거에 대한 후회로 현재에 몰입할 수 없어 무기력을 느끼는 성인에겐 효과적입니다. ‘막 살라’는 말은 염세주의적인 말처럼 들리지만 실은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로워져 오늘에 집중할 수 있거든요.

우리 뇌에는 ‘노력하면 완벽해질 수 있다, 노력하면 항상 행복할 수 있다’ 같은 생각이 나도 모르는 새 들어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열심히 사는 것과 그 결과 꼭 성취해야 할 삶의 상태가 한없이 높은 건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런 높은 기대는 무너지기 쉽고, 오히려 무력감으로 이어져 삶의 에너지를 앗아가기 때문입니다.

‘내일 죽어도 그만’이란 깡은 심리학적 용기입니다. 불안하다며 숨는 대신 삶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오늘에 몰입하는 것이죠. 사실 미래라는 건 없습니다. 오늘만이 내가 사는 시간입니다. 내일은 또 새로운 오늘일 뿐이고요.

가을 날씨가 좋습니다. 이 가을을 즐기지 못한다면 오늘을 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불안의 시작은 죽음에 대한 공포죠. 그 죽음을 달게 받아들이는 용기가 있을 때 오늘을 제대로 즐기도록 뇌가 설계돼 있는 것, 신비로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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