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해외칼럼

펜타곤의 현실과 환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미국 펜타곤(국방부)은 오늘날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처한 미국 상황의 '현실'과 도처에 존재하고 있는 위험 때문에 해외 파병의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사실상 거의 모든 미 지상군이 여기에 얽매어 있다. 정규군과 예비군, 그리고 해병대 등은 사기가 저하된 채 능력 범위를 벗어나 과도하게 파병돼 있다. 자원병 지원자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를 타계하기 위해서는 징병제만이 유일한 대안이지만 도입이 쉽지 않다.

게다가 병사의 개인장비나 무장 차량도 원활히 제공하지 못하는 국방부는 새로운 핵무기나 우주전쟁에 몰입해 있다. 국방부는 현실적 타당성도 없이 이러한 프로젝트에 막대한 신규 지출을 원하고 있다. 펜타곤과 에너지부는 지하를 파고 들어가는 벙커 버스터 등보다 사용 가능한 새 핵무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는 논쟁거리가 되고 있으며 새 핵무기를 개발하는 정치적 비용은 막대하다.

공군은 우주전에서의 우월성 확보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이미 엄청난 돈을 지출했으며 앞으로 수조 달러를 더 지출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것은 현실과 실제 예측 가능한 미래의 안보와는 무관한 군사적 능력에 대한 새로운 요구다.

항로를 잃은 민간 경비행기가 지난달 9일 워싱턴 상공에 진입했다. 의회와 백악관.행정부 는 혼비백산해 대피소동을 벌였다. 우주에 눈을 돌리고 있는 사이 경비행기 한 대가 워싱턴을 테러했다. 전자는 비용면에서 볼 때 '환상'이고 후자는 현실이다.

나는 국무부에 새로 생긴 '재건과 안정국'에 주목해 왔다. 미국이 시장민주주의에 들어오도록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나라들을 재건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부서는 국방부가 공격하고, 국무부는 재건할 명단에 오른 25개국을 주시하고 있다. 공직자.비정부기구와 협력기업의 전문가로 구성되는 '신속 대응군'을 모집하고 있다. 서로 다른 세 개의 나라에서 동시에 완전하게 재건임무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키기를 바라고 있다. 재건 작업은 수익성이 있는 새 시장 분야다.

재건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미군도 수익성을 내야 한다. 그러나 인구가 2500만 명도 안 되는 농업국가로, 대량 파괴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은 평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 재건을 위해 사용한 막대한 돈으로는 이라크에서 전력과 맑은 물을 공급하고 배수로를 만들어내야 한다.

25개 국가를 재건하는 프로젝트는 현실과 동떨어진 채 워싱턴이 추진하고 있는 전형적 사례다. 한 고위관리는 미국이 이라크에서 패배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폭군을 쫓아내고 전 세계에 자유를 전파한다고 선언한 행정부의 정책적 목표 때문에 나온 관료주의적 대응이다. 미국은 실패 사례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테러와의 전쟁에서 부적절한 힘의 비대증상을 앓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재선 후 한 참모는 "우리는 현실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발언은 허구에서 현실을 만든 20세기 전체주의 정권의 가장 중요한 관점과 관계 있다. 그 관점은 잘못된 이데올로기적 환상에 기초한다. 그러나 이 환상은 국가정책의 바탕이 되는 현실이 됐다. 환상은 내부의 잘못된 생각이 재앙을 부를 때까지 파국적인 진실이 됐다.

미국 정부 시스템이 새로운 핵무기의 사용을 요구하게 되는 새로운 전쟁과 위험에 직면했다는 전제하에서 작동한다면, 그리고 우주로부터 위협에 직면했다는 가정하에서 움직인다면 그때야 비로소 현실이 만들어질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위조된 미국판 진실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긴 안목으로 보면 미국인도 이것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윌리엄 파프 IHT 칼럼니스트
정리=한경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