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나홀로 강세'에 해외펀드 울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원화가 '나 홀로 강세'를 보이면서 해외 펀드 투자자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달러.유로화 등에 대한 원화 환율이 떨어지면서 입는 손해가 투자 수익을 상당부분 까먹어 실속이 없기 때문이다. 투자 지역 현지 통화를 기준으로 한 1년 수익률과 원화로 환산한 수익률 간의 차이가 최고 20%포인트 이상 벌어지기도 하고, 현지 통화 기준으로는 수익이 났으나 환전을 하면 원금 손실이 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특히 올들어 해외 증시 부진까지 맞물리면서 원화 기준으로 연초 대비 수익을 낸 해외 펀드는 10개 중 1개꼴에 불과하다. 해외펀드는 지난해 초부터 인기를 모았으며 4월 말까지 투자액은 4조원이 넘는다.

◆환율 하락 직격탄=6일 펀드 평가사인 제로인에 따르면 주식 투자 비중이 70% 이상인 144개 성장형 해외펀드의 현지 통화 기준 1년 수익률(5월30일을 기준으로 1년 역산한 기간의 수익률)의 단순 평균치는 15.7%에 이른다. 그러나 국내 투자자가 원화로 환전해 실제로 받는 수익인 원화 환산 수익률은 은행 예금 이자보다 적은 평균 0.35%에 불과했다. 2% 안팎의 수수료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원금도 못 건진 셈이다.

조사 대상 펀드의 절반이 넘는 74개 펀드는 현지에선 이득이 났지만 원화로 바꾸면 원금을 까먹은 것으로 나타났다. 메릴린치의 '글로벌 소형주 펀드'는 달러 기준 수익률은 14%였지만 원화 환산 수익률은 -1.2%였다. '슈로더 ISF 유럽시가총액가중펀드''피델리티국제펀드'' HSBC 영국제외 유럽오퍼튜니티펀드' 등도 현지 통화 기준으로는 10% 이상의 수익을 냈으나 원화로는 손실이 났다.

수익률이 좋은 펀드들도 환율 영향을 비켜가지 못했다. 1년 수익률이 가장 좋은 '메릴린치 남미 성장형 펀드'도 달러 기준 수익률은 62.8%였으나 원화로 환산하면 수익률이 40.1%로 뚝 떨어진다. 수익률 상위 20위 펀드의 현지 통화 기준 수익률과 원화 환산 수익률의 차이는 15~22%포인트에 이른다.

투자 지역별로는 남미와 동유럽 시장에 투자하는 펀드들의 성적이 그래도 좋았고, 아시아 지역 투자 펀드들은 중위권을 형성했다. 미국 증시의 약세 등으로 북미 지역에 주로 투자하는 펀드들은 대체로 하위권으로 처졌다.

한편, 올 들어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각국 증시가 약세를 보이면서 해외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이 현지 통화 기준으로 평균 2.6%, 원화 기준으로 -3.5%에 머무르고 있다.

◆묻지마 투자 금물=자체적으로 환헷지(위험 분산)를 하며 투자 위험을 분산하는 해외 펀드는 피델리티 글로벌 주식형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펀드에 가입할 때 별도로 선물환 계약을 해야한다. 그러나 원금에 대해서만 보장이 되기 때문에 환율 하락에 따른 수익 감소를 완전히 피하기 어렵다.

한화증권 민상일 연구원은 "해외 펀드 투자에 앞서 향후 환율 추이에 대한 전문가 전망을 참고하는 것이 좋고, 투자 지역의 시장 동향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 투자를 하면 환율이 오르내리는데 따른 영향을 어느 정도 상쇄시킬 수 있다. 해외 펀드의 1년 평균 수익률(원화)은 0.35%였으나 3년 수익률은 평균 26%에 달했다. 제로인 이재순 조사분석팀장은 "해외 펀드 투자의 첫 번째 목표를 고수익으로 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국내 시장에 국한됐던 투자의 폭을 해외로 넓히는 분산 투자 수단으로 해외 펀드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