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해의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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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력후 우리가 처음 맞은 임술년은 서기2년이었다.
중국에선 이미 한이 나라를 세운지 2백여년이 지났으나 우리는 삼국정립의 초기. 신라 혁거세왕 59년, 고구려 유리왕 21년, 백제 온조왕 20년이었다.
서양에서도 이때면 로마제국초기,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이해에 딸「율리아」의 불륜에 격노해서 소아시아로 추방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과 서양에 비해 이때의 우리역사는 아직 설화에 묻힌 시대였다. l394년 갑술년에는 이성계가 고려의 잔재를 모두 씻어내고 도읍을 문양으로 옮긴 해였다. 당초 그는 계룡산을 신도읍으로 마음에 두었으나 『그곳은 너무 남쪽으로 치우쳐 도읍을 세우기에 부적당하다』 (지편어남, 부의건도)고 결론을 내렸다. l430년 경술년엔 처음으로 아악보가 완성돼 「음악의 국풍」이 확립됐고 이어 1442년 임술년에는 측우의 제가 상정되었다. 세종범년, 천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1502년 임술년에는 연산군이 명에 사람을 보내 염직을 배우게 했다. 새로운 패션에 눈을 뜨기시작했다고나 할까. 이때 서양에선「콜룸부스」가 항해를 계속하며 온두라스해안을 발견했다.
1562년 임술년엔 임거정이 포살됐고 1598년엔 6년 왜난의 전화가 비로소 끝난 해이기도 하다.
1622년 임술년은 광해군14년인데 이때 담배가 크게 유행했다. 왜군에 의해 유입된 담배는 처음에 「담바귀」「남령초」등으로 불리었다.
『돈은 개같이 벌라』는 속담도 있지만 조선왕조에서 처음으로 철전이 등장한 해가 바로 갑술년(1634년) 이었다. 그때까지도 백성들의 화폐에 대한 인식이 얕아 통용되지 못하다가 60년 뒤인 1694년 숙종20년에 비로소 어영청에서 본격적인 주전을 만들어 썼다. 이미 고려중기부터 철전을 주 사용앴으나 그 사용범위는 귀족층에만 한정된 것이었다.
근세로 들어오면서 개띠해에는 사회적 변천이 특히 눈에 띈다.
1802년 순조 2년엔 「나폴래옹」이 종신통령의 지위에 올랐으며 1814년 갑술년엔「스티븐슨」의 증기기관차가 발명됐다.
1850년 경술년엔 중국에서 홍수전의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났고 1862년 철종13년 한국에선 말을 타고 총을 쏘는 도둑 떼가 극성을 부렸다. 이것을 기마방포명화적이라 부른다. 1910년경술년엔 끝내 한국이 일본에 병탄되는 비운이 찾아왔다.
그러나 1934년 갑술년엔 부산·장춘간의 직통열차가 운행을 개시해 그때만해도 대륙은 먼나라가 아니었다.
「술」해라고 각별히 역사의 기복이 유별난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새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인공으로서 각오는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올해는 제5차5개년 경제사회개발의 첫해다. 성실의 미덕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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