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부시 때 첫 부임 13년간 장관 6명과 일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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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무부의 산 역사로 불리는 리처드 바우처(사진) 대변인이 물러났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3일 이례적으로 국무부 브리핑 룸에 내려와 "나는 언론 관계뿐 아니라 모든 외교 문제를 바우처와 상의했었다"며 감사를 표시했다.

바우처는 국무부의 다른 주요 보직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는 주한 미국대사 기용도 검토됐지만 고등학생 아들의 전학 문제를 이유로 본인이 고사했다고 한다. 그는 국무부 역사상 쉽게 깨지지 않을 기록을 갖고 있다. 13년간 무려 6명의 국무장관 아래서 대변인을 지냈기 때문이다.

키프로스 대사와 홍콩 총영사 등을 역임한 바우처는 1989년 조지 부시 대통령 때 처음 국무부 대변인에 임명됐다.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 시절이었다. 국무장관이 로렌스 이글버거로 바뀌었지만 계속 근무했다.

92년 선거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이 당선돼 정권은 민주당으로 교체됐지만 바우처 대변인은 살아남아 93년까지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 아래서 일했다.

2000년에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바우처를 다시 대변인으로 임명했다.

그해 말 선거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승리함에 따라 정권은 공화당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바우처를 바꾸지 않았다. 그 뒤 라이스 국무장관도 그를 계속 신임했다.

이런 경력 때문에 바우처는 클린턴 때는 대북 유화정책을 앞세우다가 부시 때는 강경정책을 설명해야 하는 모순된 처지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의 국익은 정권에 상관없이 일관된 부분이 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기자들에게 끌려 다니는 게 아니라 기자들을 끌고 가는 능수능란한 브리핑을 한 대변인으로 평가된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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