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최우석 칼럼

경제난과 신종 건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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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경제가 자꾸 어려워지는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중앙은행의 과학적 설명만으로는 아무래도 미흡하다. 곰곰 궁리해 본 끝에 요즘 건달이 너무 많아져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요즘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일들이 경제에 안 좋은 것이고 그것들이 대개 건달들의 짓이란 점에서 그렇다. 건달이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을 보면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돌아다니면서 남의 일에 트집 잡기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3공(共) 때 어느 국회의원이 "우리가 백수건달도 아니고 만날 국회에 나와서 싸움질이나 하니…"라고 말해 한때 건달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때만 해도 순박한 시절이어서 건달짓을 하면서도 약간 계면쩍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일없이 빈둥거리기만 한다면 피해는 별로 크지 않다. 그러나 번듯한 자리와 힘을 갖고 바쁘게 설치면 일은 커진다. 이들은 이론도 밝고 말도 잘한다. 의식은 건달이지만 겉은 멀쩡하여 자신이나 세상이나 건달인 줄 잘 모른다. 일종의 신종 건달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신종 건달은 날로 불어나 경제뿐만 아니라 나라를 어렵게 하고 있다. 생산적인 일에 전력투구하지 않는 이들이 두터운 층을 이루어 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크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건달들은 각계각층에 널리 퍼져 있다. 특히 정치권이나 무슨 위원회, 국영기업과 관변단체, 시민운동권, 노조 등이 좋은 서식처다. 그런 부류들이 득세하다 보니 요즘은 멀쩡한 사람들에게까지 건달의식이 급속히 확산되는 것 같다. 한번 맛을 들이면 땀 흘려 일하는 생업엔 종사하기 어려워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식한다. 이것들을 한번 쓸어내는 것이 개혁인데 그게 어렵다. 너무 오래되고 층이 두텁기 때문이다.

이러니 앞날이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경제는 경제만으론 잘되기 어렵다. 경제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좋아져야 경제도 잘 돌아간다.

이들 신종 건달을 어떻게 식별해 낼 것인가. 이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무고민증(無苦悶症)이다. 나라나 세상의 큰 고민에 대해 무관심하고 태연하다. 노는 세상이 좁고 보는 눈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세상일을 진지하게 고민해 정통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임기응변, 재치로 풀려 한다. 요즘 경제가 얼마나 어렵고 복잡하게 꼬여 있는가. 그런데도 여전히 경제가 걱정없다고 큰소리치는 사람이 많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전에는 불난 줄 모르는 것이다.

둘째는 무염치증(無廉恥症)이다. 수치나 염치라는 것을 잘 모른다. 배짱이 두둑해 그럴 수도 있고 무식해 그럴 수도 있다. 스스로 눈을 감으면 세상이 모른다고 생각한다. 경제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따라서 누가 담당해서 어떻게 일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건달들이 중요한 자리를 맡고 이들이 건달정신으로 일하면 경제는 죽을 쑤게 되어 있다.

이들은 통도 커서 나랏돈으로 일을 크게 벌인다. 재정적자가 늘어나고 세금이 무거워지면 민간경제가 압박받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 돈을 통 크게 쓰면서 스스로는 나라를 위해 좋은 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심한 무책임증(無責任症)에 걸려 있다. 큰일을 하다 보면 시행착오는 있게 마련이다. 그러면 잘못을 깨닫고 바른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건달들은 잘못된 줄을 모른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니 책임을 떠넘기거나 거짓말까지 한다. 그러니 말만 많고 일이 진전되지 않는 것이다. 머리들은 좋아 논리정연한 핑곗거리는 오죽 잘 찾는가. 각종 경제대책이란 것도 말만 거창했지 되는 게 없고 무슨 무슨 프로젝트로 전국을 투기판으로 만들어 놓고도 태연하다.

세상일치고 경제와 관련되지 않는 것이 없다. 경제가 어려워지는 데 모두들 한몫씩 거들어 놓고 다른 사람에게 핑계대고 호통치는 덴 매우 능하다. IMF 사태 청문회 때와 달라진 것이 없다. 스스로 무슨 일을 했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요즘 경제가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드니 추경이라도 짜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신종 건달을 그대로 두고 추경을 아무리 짜본들 효과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최우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