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운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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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폴란드는 군사통치 1주일을 넘겼지만 극도의 혼란속에 빠진 사태는 수습되는 것이 아니라 날이 갈수록 악화·확대되고 있다.
「빵과 자유」를 요구하는 한 나라의 국민들의 입에 총검의 재갈이 물리는 것은 그것 자체로써도 족히 역사의 심판을 받을 일이지만 폴란드의 파국은 동서관계를 비롯한 국제정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알기 때문에 우리는 사태가 조속히 진정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미국은 설사 소련이 폴란드에 무력개입하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난다고 해도 미국이 군사적인 「대응책」을 쓸 여지가 없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있다. 나토의 다른 회원국들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폴란드가 또하나의 체코슬로바키아나 아프가니스탄이 된다면 데탕트 무드가 일차적으로 치명타를 입을 것이고 따라서 제네바군축회담을 비롯한 일체의 동서대화가 일단 정지를 당할것이 확실하다.
아프가니스탄사태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소련에 대한 곡물판매를 중지할 것이고 이번에는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같은 주요곡물생산국들이 적극 미국의 조치에 동조할 것이다.
이것은 3년 연속 흉작을 만난 소련에도 바람직한 사태가 아닐뿐 아니라 미국의 곡창지대에 엄청난 곡물재고가 쌓인다는 것이 「레이건」행정부에도 감당하기 어려운 정치적인 부담이 되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폴란드사태 때문에 미소관계, 그리고 전반적인 동서관계가 냉각되는 마당에 중동의 유전지대나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긴장지대에서 대치·적대하는 국가나 세력들간에 대화의 무드가 조성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공산국가의 통치형태에서 당이 절대적인 우위에 서는 것은 초보적인 원리다. 게엄하의 폴란드가 「구국군사평의회」에 의한 군정을 실시하고 있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야루젤스키」가 이끄는 폴란드정부와 당이 당의 절대권에 도전하는 자유노조를 억압하기 위해서 군을 당의 위에 올려놓은 것은 아이러니이기도 하지만 폴란드사태가 그만큼 복잡하고 심각함을 실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런 변칙을 가지고도 사태의 악화를 방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3천5백만명의 폴란드인구중에서 자유노조회원이 9백50만명이고, 폴란드군병력 31만7천명의 과반수에 해당하는 18만7천명이 징병이라는 통계를 보면 군대에 의한 실력행사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이 점은 긍정적인 요소인 동시에 부정적인 요소라는데 문제의 어려움이 있다. 폴란드군정에 사태의 수습능력이 없다는 판정이 날 때 보다 강도높은 첩장이 나올 것이다. 그것은 소련의 직접 개입이거나 최소한 바르샤바동맹국가들의 개입이될 것이다.
이런 형편에 미국이나 그밖에 서방세계의 힘있는 나라들이 취할 효과적인 방도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 그러나 서방의 주요국가들이 단합된 「하나의 목소리」로 소련에 자제를 거듭 촉구하면서 자제를 잃는 대가가 어떤 것인가를 단호하게 밝혀두는 것이 부질없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70년, 76년, 80년의 세차례에 걸쳐 폴란드군 최고책임자로서 파업중인 노동자들에게 총구를 겨누기를 거부한「야루젤스키」의 이성과 애국심에 기대를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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