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위전 도전권 딴 '옥왕' 옥득진2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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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 왕위전에서 무명 돌풍을 일으킨 옥득진 2단.

옥득진 2단이 KT배 왕위전의 도전권을 따내는 과정은 험난했다. 초반엔 여자기사 강승희 2단과 노장 노영하 9단을 만나 비교적 쉽게승리를 따냈지만 그 다음부터는 안달훈 6단, 박정상 5단, 박지훈 4단, 조한승 8단, 윤준상 3단, 원성진 6단 등 지옥의 코스라 할 만큼 험난한 상대들과 연속해 악전고투를 치러야 했다. 이세돌 9단, 최철한 9단, 조훈현 9단, 유창혁 9단 등 최정상급을 피한 것, 그리고 이들이 다른 강자들에게 꺾인 것은 행운이라 할 만하다. 그렇더라도 무명 기사 옥득진이 한 번 지면 그대로 탈락인 토너먼트에서 강력한 적수들을 상대로 8연승을 거두며 도전권까지 따낸 것은 2005년 바둑계 최대의 이변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차분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옥득진을 2일 만나봤다(옥득진은 이번 승리로 별명이 옥동자에서 '옥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도전권을 따내기까지 모두 8연승을 거뒀다. 이 중 가장 힘들었던 판은.

"내용으로는 박정상 5단과의 대국이 가장 어려웠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원성진 6단과의 도전자 결정전 때 가장 큰 압박을 받았다."(옥득진은 8판 중 7판을 백으로 이겼고 한 판만 흑이었다. 그 한 판이 마스터즈 우승자 박정상과의 대국이었다.)

-도전자 결정전에선 언제 승리를 예감했나.

"좌변에서 흑의 허리를 잘라내는 데 성공하면서 우세를 느꼈다."

-8연승을 하는 석달 동안 심경의 변화도 많았을 것 같은데.

"그렇다. 처음엔 도전권은 꿈도 꾸지 않았다. 한 판 한 판 이기면서 자신감이 쌓였고 나중에 가서는 나에게도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난해 11월 군대 제대 후부터 갑자기 성적이 좋아졌는데 혹시 군대생활 동안 비장의 공부를 한 것 아닌가.

"군에서는 바둑 공부를 전혀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갑자기 세진 이유를 뭐라고 설명할 수 있나. 군대 3년 공백은 마이너스라는 게 통설 아닌가.

"군대 가기 전엔 그 문제 때문에 신경이 쓰였으나 갔다 오니 오히려 홀가분했다. 또 강한 기사는 군대가 마이너스겠지만 나는 워낙 약해서 3년 공백이 별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처럼 약한 기사가 어느날 느닷없이 이세돌 9단 등 181명의 프로를 모두 제치고 도전자가 될 수 있나.

"그래서 나도 기적이란 생각이 든다(웃음). 군대에서 정신력이 강해진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강자가 두렵지 않았고 한 판씩 이기면서 자신감이 쌓여갔다. 예전에 못 느껴본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목표를 세웠나.

"특별한 목표는 없다. 불과 몇 달 동안 나 자신도 놀랄 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런 승리들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이제 이창호 9단과 5번기를 두게 됐다. 소감은.

"이창호 9단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기사다. 꿈 속에서 상상하던 일이 실제 벌어졌다. 영광이다. 생애의 기회로 생각하고 열심히 배우겠다."

◆하이라이트=원성진 6단이 흑1로 급소를 짚어 3으로 돌파하자 백이 곤란해 보인다. 그러나 옥득진 2단은 4,6으로 버리고 흑▲ 석 점을 잡는 바꿔치기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이것이 멋진 사소취대(捨小取大)여서 백은 일거에 승세를 잡게 됐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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